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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암의 노래를 들어라 -2 >


k가 자연인으로서 살아있다는 것과 교사로서 죽었다는 것은 그다지도 화제가 되지 못했다.


내가 우연히 k의 트윗 계정을 처음 알게된 것은 연애에 실패해 몸무게가 14킬로그램이나 빠진, 경력 5년차 여름 즈음이었다.


나에게 스마트폰과 트위터를 알려주었던 p옹은 몇해뒤에 적폐 정권의 말도 안되는 소송에 몇년이나 괴롭힘을 당하는 동안 온 맘은 갈기갈기 찢기고,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플라스틱 자갈을 끼워진 채 끝까지 자기 검열을 하다가 SNS에서 사라졌다.


내가 p옹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p옹은 마치 길잃은 강아지 처럼 힘없이 쪼그라들어 있었다.


날 페이스북과 팟캐스트 그리고 유튜브에 인도했던 분은 모두 세분이었다. 한분은 k, 다른 한분은 p옹. 두분 모두 페이스북 등에서 사라지셨다. 유일하게 남은 부산의 m 선생님은 교감이 되어 바쁘게 하루 하루를 보내고 계신다.


K는 좋은 교사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애들을 가르치는 직업은, 단적으로 말해서 자신의 철학과 학교, 교육청을 둘러싼 현실과의 거리를 확인하는 일이다. 필요한 건 긍정과. 장미 빛 미래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상황에서 멘탈을 놓지 않는 것이다. “


내가 한 손에 회초리를 들고 눈에 힘을 주며 교실을 들어가지 않기 시작한 것은 분명히 새 교육감이 학생 인권 조례를 전면 시행한 그해 가을이었다. 그로부터 벌써 6년이나 지났다. 6년 동안 나는 참으로 못볼 걸 많이 보았다.


마치 날개가 끊어진 전투기가 조종사라도 살기 위해서 모든 미사일과 첨단 기기들을 내팽겨치고 마지막으로 기억하고픈 가족 사진도 내팽개치고 낙하산을 당기듯이 지난 6년 동안 나는 온갖 것을 다 비워내고 그 대신에 생활 지도 자체에 대한 아무런 수단도 몸에 지니지 않게 되었다.


학생 인권 조례와 체벌 금지가 과연 옳았는지 나로서는 확신할 수가 없다. 편해진 건 확실하다고 해도 아이들 잘못에 눈을 자꾸 감으려 할 때, 도대체 나에게 무엇이 남아 있을까 생각하면 내 자신이 참으로 무력하기 짝이 없다.


힘없는 잔소리 후에는 자존감 하나 남지 않을 것이다.


명퇴하신 한 선배교사는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편한 탁상에 앉은 정부 사람은 누구나 이상적인 꿈만 꾸지. 좀더 편한 학교에만 경험해본 교사들도 학생들은 무조건 사랑으로 주체성으로 길러야 한다고만 믿지.“


다시 한번 ‘현장’에 대해서 쓰겠다. 이것이 마지막이다. 나에게 있어서 현장에 대해서 쓰는 건 몹시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한 몇달 동안 페이스북을 닫고 사람들을 멀리할만큼 ‘현장’에 대해서 입과 눈을 닫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건 미안한 작업이기도 하다. 나보다 더 힘든 학교에서 일하는 선생님들에 비하면 이 ‘일반적 학교’에 대해 정의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너무도 배부른 작업이기 때문이다.


체벌금지 3년 후부터였을까, 나는 주변 선생님들이 ‘자학적 잘못’에 대해서는 두손을 놓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무척이나 슬펐다.


조금만 눈 감고 마음을 비우면 학생 인권 조례 후 펼쳐진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받아들이니 참으로 내가 한심했다.


모든 교육적 가치와 교사의 역할은 전환되고, 교실은 무너져 갔다.


몸은 편했다.


그것이 더 큰 불행을 불려들였다는 것은 슬프게도 훨씬 후였다.


(원작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무라카미 하루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