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평가제 - 3/5

<학부모 평가제 - 3/5> #학교SF소설


"김과장, 단우 너무 혼내지 말고. 학교일 잘 마무리하고. 오늘 큰 건은 황보홍 영업 2과장에게 부탁했으니까 푹 쉬어"

부장의 긴 답장이 핸드폰을 울렸다. 몇달 전 부장의 아들이 수업 시간에 교사와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학부모 소환' 안내장이 왔었다. 회사 일이 바빠서 못가겠다고 했었다. 구청 사람이 회사를 찾아왔고 부장은 며칠 동안 고생했었다. 학부모 소환령이 발동되면 무조건 학교에 가야한다. 세상이 그랬다. 겪어 본 사람이 아는 공감이었다. 부장은 회사는 걱정말고 학교에 다녀오라고 했다. 거짓말은 영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을 정하지 않고 무작정 교무실을 찾아 갔었다. 학교에 도착하면 모든 교사들이 자기를 챙겨 줄거라 기대한 건 아니었다.
교무실은 텅 비어있었다. 학년부 모든 교사가 마침 수업 중이었었다. 40분을 기다린 끝에 딸 아이 담임 교사를 만났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단우 아빠에요." 막상 담임 교사 얼굴을 직접 보니 어제의 화가 쑥 들어가는 것 같았다. 

"아 오셨군요. " 단우 담임 교사는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명찰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윤준수. 딸아이가 처음 만난 남자 담임 교사였다. 

"아버님. 그러면 제가 교장실로 안내해드릴게요." 준수는 병훈을 복도로 안내했다. 자리에 함께 앉아 푸념을 늘어 놓으려던 병훈은 주춤했다.

"교장실이요? 왜..." 굳이 교장실까지 갈 마음은 없었다. 만나자마자 교장실이라니.

준수는 한번 더 미소를 만들었다. "학부모 민원 상담 등은 교장실로 창구 일원화 되었습니다."

사무적이다. 너무 사무적이라 감정을 실을 틈이 없었다. 이미 감정이 수그러졌지만 이렇게 감정이 으그러질 줄은 몰랐다. 병훈은 어젯밤 분노를 재생하지 못했다. 교장실 이라니.

똑똑. 단우 담임 교사는 교장실 문을 두들겼다. 병훈은 뭔가 주도권을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원래 시나리오는 이것이 아니었다. 과녁이 사라졌다. 쏘아올린 화살은 공중에 부웅 떠있었다. 단우 담임 교사가 교장실 문을 열었다. 

"자세를 바르게 해주었으면 하네!" 흰머리가 조금 보이는 듯한 중년 여성이 쇼파에 앉은 네명의 중학생들에게 근엄하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 저희반 김단우 학생 학부모님이십니다. 학부모 평가 점수에 이의 제기하러 오셨습니다." 단우 담임 교사는 교장의 호통을 비집고 들어가 병훈을 소개했다. 

"아..안녕하세요." 병훈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지도 못했다. 교장은 호통을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반갑습니다. 윤선생?" 교장은 고개를 돌려 단우 담임 교사에게 사인을 보냈다. "윤주수 선생님? 이 아이들 생활지도가 마치는 대로 바로 교장 면담실로 갈테니 자리로 안내 부탁드려요"

교장 면담실은 교실을 개조해서 만든 것 같았다. 게시판에는 이런 저런 지침 안내문들이 붙어 이었다. 수업이 있다며 단우 담임 교사는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채 교실로 돌아갔다. 

- 학부모 평가제 이의 신청 전 알아두셔야 할 것들
- 노인 돌봄 교실 신청 방법
- 반장 승진제 포인트 산정 방식 변경
- 학부모 소환령 A to Z 

영업2과장이 옥상에서 담배필 때마다 뭐라 뭐라 했었던 것들이 교장면담실 벽면에 가득했다. 내가 아이에게 이렇게 관심이 없었나, 병훈은 차를 마시며 고민했다. 20분쯤 지나자 교장이 면담실로 들어왔다. 인사를 나누고 교장이 들고온 <가정 교원 역량 성장 평가> 서류를 한부 받았다. 같은 서류를 2부씩 인쇄해 왔다. 교장은 이런 일이 많았는 듯 단계별로 설명을 이었다. 그 촘촘한 이음새에 병훈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교장 선생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말도 안되는 것 아닙니까? " 병훈이 어렵게 교장의 사무적 이음새를 비집고 들어갔다. 
교장은 인자한 미소를 애써 지었다. "단우 아버님? 어떤 것이 말이 안되는 것이지요?"

병훈은 어젯밤 잠을 설치며 심장을 쿡쿡 쑤시던 부조리들을 쏟아 내었다. 
"담임 교사가 제 가정 교육에 대해 뭐라 하는 것, 네. 좋아요 그건 어디까지 그럴 수 있을 거에요. 그런데요. 어떻게 수업 교사가 저희집 가정 교육을 평가합니까? 수업 태도 몇번 보고나서 집에서 인성 교육을 어떻게 시켰는지를, 가정 교육을 어떻게 했는지를 어떻게 압니까?"

커피잔을 내려 놓으며 교장이 말을 이었다. 몇십번은 반복해서 한 듯 물 흐르듯이 말을 이어갔다. 
"단우 아버님?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국가에서 만든 제도에요. 그 제도 안에서 저희는 따를 뿐입니다. 평가 기간에 평가를 하지 않으면 교육청, 구청, 보건 복지부에서 학교뿐 아니라 단우 아버님, 아버님 마을 커뮤니티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 잘 아시죠?"

단우 아버지는 그제서야 알았다. 학교에서 가장 높다는 교장도 학부모 평가제 시스템 자체를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타협점이라도 찾고 싶었다.

"그러면 교장선생님. 이거 점수라도 어떻게 좀 안되겠습니까? 이번에 가정 교육 평가 점수가 이렇게 낮게 나오면...제가.."

녹차 티백을 위 아래로 의미 없이 당겼다. 교장은 티백을 놓고 잠시 창밖을 쳐다보았다. 표정은 여전히 지어낸 인자함이 묻어있었다.

"지금... 외압을 주시는 거라면... 구청 복지과, 교육청 학부모 평가단에게 전화를 넣을 수 밖에 없습니다. 단우 아버님." 
지어낸 인자함에서 감처둔 단호함이 흘러 나왔다. 

교문 밖을 걸어 나왔다. 병훈은 혼잣말로 욕을 계속 내뱉았다. 이제 믿을 건 마을 공동체 평가 점수 뿐이었다. 
평가 점수 공개는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입력 순서도 마찬가지다. 자녀 평가, 교사 평가 그리고 마을 공동체 평가. 마을 공동체 평가는 열흘 뒤에 진행한다.

핸드폰을 열었다. 마을 공동체 sns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오랜만에 접속이었다. 아이디와 비밀 번호를 확인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접속에 성공하자 핸드폰이 연속으로 울렸다.
마을 공동체 커뮤니티의 밀린 알림이 쏟아졌다. 해마다 학부모 평가 기간이 오면 게시판에 온갖 가족 사랑 이야기가 넘쳐난다. 

"하여간....참부모들 나셨어...."

굵은 폰트로 공지사항이 메인 화면 최상단에 떠있었다. 마지막 희망 메시지였다.

<오늘 저녁이신 것 아시죠? 제 13회 홍은동 참된 아빠 모임 정기회가 화요일 저녁 7시에 열립니다>

병훈은 황과장에게 문자를 넣어 저녁 약속을 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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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일

EBS 미래를 여는 교육 MC /KBS 라디오 공부가 재미있다 출연진/너도 모르는 네맘 나는 알지 저자/아이스크림 원격 연수원 사회 교실 강사/MBC 스페셜 '선생님 마이크로 교실을 깨우다'/소통 강사/진로 특강 강사/스마트 워크 강사/안태일 학교시집/탤짱닷컴 tv/출제해서 생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