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평가제 4/5
<학부모 평가제 4/5> #학교SF소설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제도인지 이제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제 13회 홍은동 참된 아빠 모임 정기회, 큼직한 글씨의 커다란 현수막 앞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병훈은 귀를 잠시 막을까 고민했다. 마이크를 잡은 사내의 진지한 표정에 손을 내렸다.

"여러분! 도대체. 가정 교육을 점수로 산정하면, 저녁이 있는 삶이 생겨납니까? 자녀와의 대화가 늘어납니까? 인성 교육, 인생 교육, 진로 교육, 밥상 머리 교육이 잘된답니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사랑입니다. 어떻게 사랑에 점수를 주고 말고 한단말입니꽈아아아아"

맥주 한잔씩 나누면서 학부모 평가 점수를 서로 좋게 좋게 주려고 모였던 자리다. 느닷없는 열변에 몇몇 아빠들은 헛기침을 내뱉었다. 두서너명 좋은 가족 사례를 발표하고 서둘러 2차를 갈 생각이었다. 열변을 토하는 아빠는 커뮤니티에서도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병훈은 힐끔 사내의 명찰을 다시 확인했다. 

[현주 아빠 : 정기화]

현주 아빠. 병훈은 폰을 꺼내 게시자 검색에 정기화를 쳐보았다. 커뮤니티 전체 글의 3분의 1은 차지하는 것 같았다. 글 내용도 다른 아빠들과 달랐다. 서로 안부를 묻고 아이딸 키우기 참 힘들다는 글과 결이 다른 게시물을 썼다.

- 학부모 평가제의 허상
- 평가제도는 결코 가정 교육 정상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 점수로 부모를 평가한다?
-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교과 담당 교사가 가정 교육을 평가한다?

현주 아빠는 우렁찬 목소리만큼이나 글 제목도 직진이었다. 기화의 열변을 뒤로 하고 최근 게시물을 검색했다. 학부모 평가제 시즌이 다가오자 올라오는 글 내용에 변화가 보였다.

- 가정교육 성과급 균등 분배로 우리 아빠들의 뜻을 모읍시다.

가정교육 성과급 균등 분배? 문장은 한번에 이해했다.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해본적 없었던 저항법이었다.

"여러분! 제가 늘 커뮤니티에서 말씀드렸던 것을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아빠들이 먼저 나서는 겁니다. 그깟 연말 소득 공제? 양육비 혜택? 가정교육 성과에 따라 주는 교육비 지원? 
왜 우리 아빠들끼리 경쟁을 해야하는 것입니까? 이것이 가정 교육의 정상화이고! 이것이 과연 마을 공동체를 살리는 길이랍니까?"

아빠들 몇몇은 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주 아빠의 강력한 울림에 주먹을 불끈 쥐는 아빠들도 보였다. 대부분 아빠들은 맥주집 예약 시간을 걱정하는 듯 시계를 쳐다보거나 폰을 만지작 하고 있었다. 

현주 아빠는 마이크가 필요 없었다. 마이크에 증폭된 목소리는 이미 구청 열린 시민실을 뚫고 나갔다. 구청 건물 전체와 동네 전체에 울릴 것 같았다.

"가정 교육 성과급 받은 것을 모두 모아서 균등 분배하는 겁니다. 물론 보건 복지부와 교육부에서는 절대 금지한다고 엄포를 놓았지요! 마치 가정 파괴범처럼 몰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투쟁해야 합니다! 자, 여기 이제 동의하시는 분들은, 아빠들이 나눠 드리는 종이에 동의서와 계좌 번호를 적어 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선생들 눈치를 봐야 하고, 자식들 눈치를 봐야하는 것입니까? 아는 어느 학부형은, 애가 잘못된 행동을 했음에도, 평가 점수가 무서워 혼내지도 못한다고 하쟎습니까?"

고개를 심하게 끄덕이던 아빠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줄부터 차근 차근 가정교육 성과급 균등 분배 동의서를 나눠 주었다.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받는 아빠들, 애써 웃으면 받는 아빠들, 굳은 표정, 반짝이는 눈동자로 받는 아빠들. 병훈은 동의서를 한참 동안 쳐다 보았다.

- 최상등급과 최하등급 차이가 월급의 절반을 넘는 부조리!
- 성과급 균등 분배는 정부에 보내는 시민의 메시지!
- 함께합시다! 부모님들!
- 사랑은 숫자로 표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 가정 교육에 성과가 어디에 있는가!

구석 문구가 심장을 비집고 들어왔다.

- 최저 그룹을 모아 교육부 징계 위원회에 회부한다는 발상은 전형적인 파시즘! 

어제 낮에 옥상에서 황과장이 스치듯 말했었다.

"최저 그룹을 모아서 징계 위원회에 회부한다고 하더라. 뭐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닌데... 부모 교육 30시간 이수에, 인사 고과 반영에.... 게다가 연수 이수 점수마저 낮으면... 양육권 박탈이라니.. 이거 도대체 말이나 되는 건지... 뭐 그럴 일이 일어나겠냐만은..."

병훈은 올해 성과급은 얼마 나올까 계산해보았다. 아빠들 모임 분위기가 어떻게 끝날지 모르지만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끼리는 점수를 후하게 주는 것이 관례였다. 그래도 분명 최하등급에 가까울 건 분명했다. 가정 폭력을 저지르지 않고서야 최저 그룹에 들어갈 일은 없었다. 내가 단우를 어떻게 키웠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단우였다.


"아빠? 다음주까지 학부모 평가 점수 정정 기간이라네?"

배은 망덕한 아이의 당돌한 문자가 심장 BPM을 끌어 올렸다. 뭐라 답장을 해야하는 걸까. 지금 협박 당하는 걸까? 길들여지고 있는 걸까? 딸아이의 푸념일까? 
최후 협상을 제안하는 걸까? 
고민이 채 끝나기도 전에 딸은 통보 문자를 보냈다.

"나 CMTS 오빠들 폰 굿즈 사줘. 요즘 폰 바꿀 때도 됐어"

문자 창을 닫았다. 고개를 드니 현주 아빠가 동의서를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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