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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생은 '직업적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백승수의 직업 정신을 좌심방에 새기기로 했다.

SBS <스토브 리그>의 주인공 백승수 단장의 직업 정신을 심장에 새겨 넣고 '직장' 생활하기로 했다. 백승수의 직업 마인드를 내면화하면 교사의 '직업적' 자존감을 지키는 데 작은 힘을 얻을 것 같다. 나도 백승수 단장처럼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스스로 규정하고 역할 수행을 향해 직진하기로 했다. 프로답게 살기 위해 때로는 귀 막고 눈 감고 출퇴근하기로 결의했다.

 

 

 

 


 백승수는 단장직에 취임하던 날부터 다양한 집단에게 도전받았다. 만년 꼴찌 구단의 구성원들은 저마다 새' 단장'의 역할을 규정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정한 단장의 역할대로 백승수가 처신하길 요구했다. 선수단은 부당한 요구사항도 백 단장이 군말 없이 들어주길 원했다. 코치단은 경기와 관련된 모든 사항은 현장 전문가인 자신들에게 위임하길 바랐다. 

프런트 직원들은 현상 유지만 해주기를 기대했다. 구단주 측은 모기업에 골칫덩어리인 드림즈를 자연스럽게 해체할 수 있도록 신임 단장이 팀을 망쳐주길 주문했다.

 

 

 

 



백승수는 귀를 닫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단장의 역할을 완수하는 일에 집중했다. 백승수가 생각한 단장의 역할은 만년 꼴찌팀이 다음 시즌에서 우승하도록 구단을 이끄는 것이었다. 백승수와 다른 드림즈 구성원들이 생각한 단장의 역할이 서로 달랐기에 갈등은 깊어갔다. 기 싸움을 넘어 급기야 물리적인 충돌도 터졌다. 그런데도 백승수는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하나씩 수행하는 데만 집중했다.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야구를 공부하고 다양한 자료를 모았다. 현장 정보를 얻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직접 만났다.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결과로 반대 세력을 설득했다. 백승수와 날을 세우던 팀원들은 야구 문외한인 그를 전문성이 있는 구단장으로 조금씩 인정했다. 백승수는 각개격파 직진 정신으로 드림즈 구단의 내부 갈등을 하나씩 정리해냈다.

 

 

 

 

교사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채롭게 갈굼 받는다. 모두가 교육 전문가인 5천만 국민들은 저마다 '교사'의 역할을 규정하고 자신들의 욕망을 이루는데 교사가 이바지해 달라고 요구한다. 어떤 학부모들은 자신이 어떠한 민원을 제기하더라도 제(my)시간에 빨리 처리해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또 어떤 학부모들은 입시와 관련된 모든 사항은 사교육 강사에게 위임했으니, 공부하느라 지친 아이의 심기를 건들지 않는 것이 교사의 중요한 역할이라 여긴다. 어떤 학생들은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든 간섭하지 않고 방관하는 것이 교사의 본분이라고 핏대를 세운다.

 

 

 

 


교육부와 나랏님들은 교사의 정체성을 "적폐 척결 대상", "잠재적 입시 부정 범죄자 집단"으로 정의한다. 나랏님들은 사교육 업자와 건축가, 법조인, 학부모로 구성된 '교육 전문가'들이 결정한 '교육' 정책을 교사들에게 그대로 따르라고 한다. 이를 잘 따르면 교사의 본분을 다한 것이요, 나랏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면 교사가 지 할 일을 다 안 했으니 맴매하겠다고 엄포를 늘어놓는다. 

5천만 명으로 구성된 교육 전문가들은 주로 댓글 창에서 교육 평론을 나눈다. 이 전문가들이 규정한 교사의 정체성은 일반적으로 "무능한 철밥통이자 적폐 원흉들."이다. 다만 스승의 날이 되면 일시적으로 "미성년자에게 맞고다니는 불쌍한 잡것들."로 격상 시켜 주기도 한다.

교사의 역할은 최근 양적 성장을 통해 외연을 확대했다. 새롭게 요구받는 교사의 역할로는 어린이집 관리 요원, 주차장 관리사, 조식 제공업자, 맞벌이 부부를 위한 맞춤형 돌봄 서비스 제공자, 학교 밖에서 일어난 폭력 사건을 책임지는 학교 밖 폭력 전문 '책임'가 등이다.

 

 

 

 


내가 원래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어 정신이 혼미해질 때 좌심방 끝을 '탁' 치면서 백승수 단장의 직업 마인드를 떠올리기로 했다. 그러면 직업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교사의 몇 남지 않은 자존감을 붙들어 맬 수 있지 않을까.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가 규정한 본래 교사 역할을 떠올리겠다. 

교사들은 출근 후 '직업인' 자아와 퇴근 후 자연인 자아를 분리하는데 서툴다. 직업 정체성과 자기 정체성을 잘 구분하지 못하다 보니 직업적 자존감이 무너지면 자아 전체의 자존감마저 휘청 휘둘려 버린다.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갈굼 경적에 잠시 귀를 막고 교사가 본래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해보겠다. 교사 안태일 이대로 무너질 순 없다. 백승수 단장처럼 자신이 원래 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정한 교사로서 나의 '직업적' 역할은 크게 세 가지다. 이 역할은 교육기본법과 교육 과정 해설서에 명시되어 있다.

 

1. 민주시민성을 함양하여 이 나라의 온전한 주권자로 성장하도록 돕기. 그리하여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2. 정당한 경제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진로 교육 함께하기. 그리하여 정당한 경제활동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나아가 이 나라의 건전한 경제 성장을 도모하기.

3. 학생들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서 온전한 삶의 주인으로 성장하여 진정한 행복을 누리며 살게 이끌어주기.

 

 

 

 


주변에서 뭐라 하든 교사로서 내가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자. 사실 이 '일'을 잘해오진 않았다. 부끄럽다. 하지만 세금만 축낸다고 욕먹을 만큼 태만하지도 않았다. 잘하진 못했지만 앞으로 잘하고 싶다.


만약 내가 할 '일'을 열심히 하면 5천만 '교육전문가'들이 "맞아. 교사는 원래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었지!"하고 인정해 줄 거라 바라는 마음이 싹튼다면, 급히 손을 휘둘러 내 여린 뺨을 광속으로 수십 번 어루만지리라. 백승수의 직업 정신을 가슴에 새기기만 해야지, 백승수처럼 인정받으려 해서는 안 됨을 잊지 말고 살리라.

 

 

 

 


백승수가 정한 단장이 해야 할 '일'을 구단 구성원들이 동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물론 그의 뛰어난 재능과 한없는 노력 때문이다. 하지만 재능과 노력만으로 그 동의를 받을 수 없었다. 백 단장에게는 단장의 권한이 있었다. 또한 백승수의 업무 목표는 드림즈 팬들의 목표와 같았다.

 비록 최종 결정권자의 결재를 받아야 하지만 백승수 단장에게는 구단 운영권이 있었다. 연봉을 협상하고, 트레이드 안을 제안하고, 훈련 방식을 제안하고, 상대를 설득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권한을 가졌기 때문이다. 만약 백승수에게 단장의 권한이 없었더라면 대화 자체가 가능했을까. 자신에게 권한이 있었기에 백승수는 단장이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정하고 이를 밀어붙일 수 있었다.


팬들은 다음 시즌에서 드림즈의 성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원했다. 백승수는 성적을 향상하는 수준을 넘어 드림즈가 다음 시즌에서 우승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백승수의 목표가 더 높았지만 큰 틀에서 팬들과 백승수 단장의 목표는 방향이 같았다. 팬들은 백승수의 결정이 자신들의 숙원을 이뤄질 수 있을 것처럼 보일 때마다 열광했다. 백승수의 목표와 드림즈 팬들의 목표가 같았기에 백승수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정하고 밀어붙일 수 있었다. 

 

 

 

 

 

내가 정한 교사가 해야 할 '일'을 5천만 '교육전문가'들이 동의하지 않을 가장 큰 이유는 물론 교사로서 내가 가진 형편없는 무능함과 한없는 방만 탓이다. 하지만 무능함과 방만만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교사에게는 '현장 교육가'의 권한이 없다. 또한, 5천만 '교육전문가'들이 동의하는 공동의 교육목표가 존재하질 않는다.



청소 당번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 정도를 제외하면 교사에게는 교육 관련 결정권이 없다. 결정권은 물론이고 발언권도 없으며 질문권도 없다. 그저 나랏님들과 '교육 전문가들' 정한 '교육' 정책을 그대로 따를 의무만 있다. 교사는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결정조차 할 수 없다.

 

 

 

교육부와 나랏님들은 5천만 '교육 전문가'들의 욕망에는 귀 기울인다. 질문권은 기본 옵션이요 발언권도 드리고 때에 따라 둥그런 테이블에 모시고 결정권도 선물한다. 문제는 이들 5천만 '교육전문가'들의 욕망이 모두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모두가 동의하는 교육 목표가 무엇일지 고민하기보다는 욕망 나눌 때 가장 민원이 적게 발생하는 '공정성'이란 무엇일지 고민하고 삽질하는데 시간과 돈을 쏟아붓는다. 욕망 채우는 거룩한 시간에 어찌 천한 교사가 "민주주의, 인격, 경제인, 자존감, 행복" '따위'를 논할 수 있을까.

그러니 행여 내가 할 '일'을 열심히 하면 5천만 '교육전문가'들이 인정해 줄 거라 바라는 헛된 마음이 피어난다면, 급히 머리를 숙여 음속으로 지면과 정수리가 수십 번 닿도록 하겠다.

 

 

 

 



"철밥통, 직무유기, 적폐, 세금 낭비, 선생 나부랭이, 잠재적 입시 부정 범죄자, 무능한 공무원, 학원 강사보다 못한 쓰레기들."

미세먼지 크기만큼 쪼그라든 내 교사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 바깥쪽 신호들은 소음 차단 처리하겠다. 난 그저 교육기본법 2조에 나온 '교육 목표'나 나 알아서 나 나름대로 성실하게 수행하는 '직업인'이 되련다.

"제 2조 (교육이념)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철밥통 '직업인'답게 어떻게 하면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을지 '직업적'으로 고민하며 살련다. 아이들의 인격을 어떻게 도야시킬 수 있을지 연구하련다. 미성년자들을 어떤 방향으로 가르쳐서 주체적인 사회인으로 성장시킬 수 있을지 머리 굴려보련다. 민주 시민성 길러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하도록 '직업적'으로 노력하겠다. 어린 친구들 모두가 성인이 되어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침을 튀기어가며 키워보겠다. 그래서 법에 적힌 대로 지구의 사피엔스 모두가 잘 먹고 잘사는데 조금이라도 이바지 하련다.

 

남들이 내 직업을 두고 뭐라 하든 말든, 교사로서 내가 '직장'에서 해오던 '일'들이 내 생각보다 숭고하다고 스스로 믿고 살겠다. 열심히는 안했지만 막하지는 않았다며 나를 달래련다. 직업적 자존감이 어느 정도 회복되기 전까지는 귀는 좀 막고 살겠다.

 

기왕 '직업적으로' 하는 '일'인데 스스로 좀 덜 부끄러울 수 있도록 훌륭하신 선생님들의 노력 100만분의 1만큼만 더 열심히 내 '일'을 하련다.

백승수 단장의 명대사를 옮겨 본다.

"그게 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