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교사들은 믿을 수 없는 집단이라고 하면서
수능 감독처럼 중요한 책무를 맡기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어요.
감독하다가 허리 나간다고 산재 요청하는 영악한 교사들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모르겠어요.

교사들은 무능한 집단이라고 하면서
돌봄에, 교내 사교육 관리에, 보건에, 주민 주차장 관리에, 동네 휴게 공간 관리를 시키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어요.
주면 주는 대로 받고, 누르면 누르는 대로 어떻게든 해 내주는 바보 같은 자판기 교사들만 가득하니까요.

그런데 이건 진짜 정말 모르겠어요.

교사들은 철밥통에, 게으르고, 할 줄 아는 것은 노는 것밖에 모르는 적폐 집단이라고 하면서

아이들 생명이 걸린 이 시급한 문제를 "전적으로 믿고" 맡길까요.

그것도 판타지 소설의 세계관을 정리해둔 것 같은 매뉴얼을 안겨주면서 "교사들이 알아서 자율적으로"
그 판타지 세계관을 현실화해보라고 하는 걸까요.
난 임용 고시를 봤었지, 호그와트 마법 학교 입학시험을 본 적 없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그동안 "안 믿는데 맡긴다" 했잖아요. 근데 왜 이번에는
"너희가 방역 전문가다. 믿고 맡긴다."라고 하시는지

저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수업 준비, 교재 연구, 수업, 학습 상담, 문제 내기, 성적 관리, 선도 위원회 개최, 진로 상담, 자존감 회복 교육, 생기부 입력 마감들, 학급 운영, 체육 대회, 인생 상담,  수학 여행 이런 것밖에 할 줄 몰라요.

어찌어찌하다 보니 돌봄에, 교내 사교육 관리에, 보건에, 주민 주차장 관리에, 동네 휴게 공간 관리도 할 수 있긴 해요.

근데 저는
이 좁은 공간에 30명의 아이를 2미터씩 띄어 놓을 공간 왜곡 마법 능력이 없어요. 도대체 뭘 어떻게 해봐도 공간이 안 나오네요.

근데 저는
몇백 명의 아이들을 초 단위로 쫓아다니며 간격을 유지 시키고 마스크를 쓰게 할 퀵 실버-플래시 스러운 스피드 초능력이 없어요. 도대체 뭘 어떻게 쫓아 다녀보려 해도 분신술을 배우지 못해 역부족이네요.

그나마 저는
마스크 쓰고 하루 몇 시간씩 쉬지 않고 수업할 수 있긴 해요. 할 줄 아는 게 원래 그거였거든요.

그나마 저는
더는 아이들과 예전처럼 지낼 수 없는 현실을 감내할 수 있긴 해요. 슬픔과 아쉬움을 참아내는 데는 도가 텄거든요. 몇몇 아이들 때문에 속이 매년 썩어가지만 그래도 버틸 줄 알거든요.

정말 모르겠어요..
근데 정말 모르겠어요.

어차피 원래 무능한 적폐 철밥통이라 세상 손가락질은 무덤덤한데요.



책상에 앉아 서류에 글자 꾹꾹 눌러서 보내시면서
"잘못되면 다 너희 탓이야~~"하는 익숙한 패턴의 "명령"을 받다 보니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자존감은
저어 어기 더 깊은 마음속 어딘가에서
꿈틀거리면서 자꾸 물어요.

내가 무능한 것도 잘 알겠고
내가 게으른 것도 잘 알겠고
내가 비겁한 것도 잘 알겠는데

왜 내겐 초능력이 없을까.
왜 난 의대를 가지 않았을까.
왜 난 화도 내지 못하고 자기 탓만 하고 있을까.

이젠 정말 모르겠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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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일

EBS 미래를 여는 교육 MC /KBS 라디오 공부가 재미있다 출연진/너도 모르는 네맘 나는 알지 저자/아이스크림 원격 연수원 사회 교실 강사/MBC 스페셜 '선생님 마이크로 교실을 깨우다'/소통 강사/진로 특강 강사/스마트 워크 강사/안태일 학교시집/탤짱닷컴 tv/출제해서 생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