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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포자가 쏟아몰린 문과반> ‪원작_난쟁이가_쏘아올린_작은공_조세희‬ 작

수학 담당 교사가 교실로 들어갔다. 선생은 학생들 책상에 수학책이 올려 있지 않은 것을 보았다. 수학 선생은 문과반을 반쯤 마음에서 비웠다. 문과반에서 수학 교사가 신뢰하는 반은 하나도 없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 지난 1년 동안 고생 많았다. 정말 모두 열심히들 주무셔 주었다. 그래서 이 마지막 시간만은 내신과 상관이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는 몇권의 정석과 EBS 책 그리고 빨간펜과 구몬수학을 뒤적여보다가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을 발견했다.

일단, 내가 묻는 형식을 취하겠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그리고 피자를 시켰다. 한 아이는 피자를 8조각을 낸 뒤 5조각을 먹겠다고 했고, 다른 한 아이는 피자를 9조각 낸 뒤에 6조각을 먹겠다고 했다.

여러분은 어느 아이가 더 많은 피자를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문과생들은 교단 위에 있는 수학 교사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한 문과생이 일어섰다.

"그냥 처묵 처묵 먼저 처먹으면 되지 않슴까? 뭘 그리 고민함까?"

"뭐.. 이런....ㅆ.,....."

수학 교사가 말했다.

"좀 생각해봐라 좀. 제발 좀"




다른 문과생이 물었다.

"그냥 그 피자가 주는 맛과 온기를 느끼면 되쟎슴까. 굴뚝 청소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교사는 말했다.

"다시 해보자. 이번에는 삼겹살 집에 갔다. 둘다 얼굴이 더러웠지. 얼굴이 더러운 아이는 그나마 깨끗한 얼굴의 아이를 보고, 1인분에 13500원인데, 우리가 7인분을 먹었어. 너와 내가 반반씩 내면 우리는 얼마씩 내야 하지? 하고 물었다. 애네는 얼마씩 낼까?"



문과생들이 야유의 소리를 냈다. 그들은 교단 위에 있는 수학 교사에게 온갖 야유를 퍼부었다.




"오늘은 내가 쏠게, 다음에 네가 내. 이게 정답아닙니까?? 뭔 사람이 그리 팍팍하게 살아요?"

"저흰 홀수 곱셈 안됩니다. 제가 괜히 문과왔나요?"



미적분을 1년 동안 가르쳤던, 문과 수학 교사가 말을 이었다.

"더 이상 대답을 기대하지 않을테니까 잘들어주기 바란다. 네들...."

교사는 분필을 들고 돌아섰다. 그는 칠판 위에다 뫼비우스의 띠라고 썼다.





"여러분은 이미 수학 교과서를 베개로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 너희들에게 수학은 입시와 상관없는 과목이겠지. 그러니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주길 바란다. 면에는 안과 겉이 있다. 예를 들자. 종이는 앞뒤 양면을 갖고 지구는 내부와 외부를 갖는다. 평면인 종이를 길쭉한 직사각형으로 오려서 그 양끝을 맞붙이면 역시 안과 겉 양면이 있게 된다. 그런데 이것을 ......"



3분 뒤 교실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앉아 있는 사람 중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