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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아귀 > 원작 : 소나기 (황순원 작)
#패러디 문학관

안선생은 학교 담벼락 밑에서 소년을 보자 곧 자기반 골초 소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소년은 담벼락에다 손을 대보며 담을 넘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중학교 시절에는 이보다 더 낮은 담벼락이었는지라 이런 높이를 보지 못하기나 한 듯이.

벌써 며칠째 소년은 쉬는 시간 마다 담벼락질이었다. 그런데 어제까지 담벼락 구석에서 넘더니, 오늘은 떡하니 교무실 창문 아래 한가운데서 담벼락을 넘으려 하고 있다.

안선생은 창가에 앉아버렸다. 소년이 담벼락을 넘는 과정을 촬영하자는 것이다. 요행 담넘은적 없다 우기는 학생들이 있어, 안선생은 증겨를 남겨 놓아야 했다.

다음 쉬는 시간 소년은 좀 일찍 담벼락으로 나왔다. 이 날은 소년이 담벼락 한가운데 앉아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파란 셔츠 소매를 걷어올린 팔뚝 문신이 마냥 거무튀튀했다. 한참 간을 보더니 이번에는 담 벼락 위를 빤히 들여다 본다. 흡연을 마치고 돌아올 동선을 비추어 보는 것이리라. 갑자기 담벼락을 움켜 쥔다. 캥거루 새끼라도 점프하는 듯. 소년은 안선생이 창가에 앉아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날쌔게 담벼락 위를 점프해 넘어간다.

그러나 안선생 '손아귀' 안이었다

인근 아파트 주차장에 모여 맛있는 양 자꾸 연구만 삼킨다. 어제처럼 지나가는 주민이 와도 길을 안비킬 모양이다. 그러다가 소년은 바지 주머니 속에서 무엇을 하나 집어 낸다.

하얀 아이폰이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팔짝팔짝 횡단보도를  뛰어 도망간다. 다 건너가더니만 홱 이리로 돌아서며 "씨발"
욕한사발이 날아왔다.


증거 자료를 확보한 안선생은 벌떡 일어섰다. 투블럭컷 머리를 나폴거리며 소년이 막 달린다. 아파트 단지 사잇길로 들어섰다. 뒤에는 청량한 가을 햇살 아래 타오르는 피단 만 담배의 연기꽃뿐. 이제 저쯤 단지입구로 소년이 나타나리라.

안선생은 소년의 동선을 에측하여 단지입구에서 기다렸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됐다. 그런데도 소년은 나타나지 않는다. 수업 종이 쳤다. 그러고도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됐다. 저 쪽 아파트 화단머리에 투블럭 컷 머리가 한 옹큼 움직였다. 소년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천천한 걸음이었다. 수업종따위는 신경 쓸 필요가 없나보다.

유난히 후덥지근한 가을 햇살이 소년의 니코틴 포만감을 더욱 빛냈다. 

소년 아닌 담배 몇보루가 학교앞 길을 돌아다니는 것만 같았다. 안선생은 교문 뒤로 숨어 이 인간보루가 손잡음 거리가 될 때까지 그대로 서 있었다.

문득, 소년 바지에 툭 튀어나온 담배갑을 훔쳐다보았다. 연기가 걷혀 있었다. 안선생은 핸드폰을 꺼내 손에 쥐었다. 이제 학생 사실 확인서를 쓰게하고 말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소년의 그림자가 뵈지 않았다. 피곤했다. 종종 자주 있는 일이었다. 소년의 그림자가 뵈지 않은채 시간이 흘렀다. 안선생의 가슴 한 구석에는 어딘가 피곤함이 자리 잡는 것이었다. 손바닥 속 핸드폰을 주무르는 버릇이 생겼다. 

안선생은 소년이 소년이 앉아 담배를 피워 마시던 아파트 주차장 한가운데에 앉아 보았다. 입 속에 담배를 물었다. 폰을 꺼내 생활 지도 교사가 순찰중이라는 메시지를 받은 것처럼 상상해보았다. 화단 사이를 보았다. 부동산 유리창에 교문 뒤 숨어있던 곳이 그대로 비치었다. 당했다. 안 선생은 두손으로 부동산 거울 속 비친 교문을 움키었다. 몇 번이고 움키었다.

그러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고 말았다. 소년이 혹시 교문이 아니라 담벼락으로 건너 들어가고 있지 않느냐. 복도 창문에 숨어서 내가 하는 순찰을 엿보고 있었구나 싶었다.

안선생은 달리기를 시작했다. 디딤돌을 헛디뎠다. 폰이 바닥에 떨어졌다. 줏어 들고 더 달렸다. 몸을 가릴데가 있어 줬으면 좋겠다. 복도 창문에서 내려다 보면 사각지대도 없다. 당했다 싶었다. 연기밭이다. 전에 없이 담배 냄새가 짜릿하게 코를 찌른다고 생각됐다. 미간이 아찔했다. 찝찔한 타르 냄새가 코에 흘러들었다. 

교내 흡연이었다.

안선생은 그제서야 교문 밖 소년은 미끼였다는 것을 알았다. 안선생은 한 손으로 담배 연기를 훔쳐 맡으며 그냥 달렸다. 시설 관리실 옆 어디선가 "끝빵, 모닝, 식후"하는 소리가 자꾸만 뒤따라오는 것 같았다.

저녁. 안선생은 페이스북을 스토킹했다. 이 곳 역시 안선생의 또하나 '손아귀'였다.


옆반 아해들이 친구 담벼락 댓글에서 글타래를 휘둘고 있었다. 

어디서 폈냐고 묻고 답하고 있었다.

소년들의 페북에는 이런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소년 1 : 안선생 때문에 말도 아니야. 그 많던 흡연 포인트를 다 뺏겨 버리고.. 대대로 피어오던 분리수거장도 그 놈 손에 넘길 판이오

소년 2 : 흡연 포인트가 그 곳 하나 뿐이었을까요. 

소년 3: 그렇지, 오늘 미끼 소년 덕에 안에서 뻐끔 뻐끔 잘 피었지 뭐여.

소년 4: 걸린 놈들은 어쩌면 그렇게 흡연복이 없을까.

소년 5 : 글쎄 말이지. 이번 안선생은 꽤 여라 날 순찰 도는 걸 보니 아파트 민원 전화가 제대로 왔나 보네 그려

소년 6 : 지금 같아서 교내 흡연 장소는 대가 끊긴 셈이지. 그런데 참 저번에 걸린 옆반 소년은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글쎄 학생 사실 확인서를 쓰면서 이런말을 했다지 않아?

자기가 선도 넘어가거든 자기 피던 담배 친구들을 꼭 그대로 선도 받게 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