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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 콩나물 라면

category tell_say 2017. 10. 21. 19:09
꼬막의 비릿하고도 짙은 향내에 섞여 술잔을 주고받는 사이, 간이 허락할 리 없는 알코올의 치사량을 감히 위장 속으로 들이부었다. 혀는 꼬이고 배는 뒤틀리는 형벌을 온몸으로 견디며, 나는 패잔병처럼 집으로 기어들었다. 

창밖의 날은 무심하게 밝았으나, 거울 속 내 얼굴은 여전히 캄캄한 밤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알코올은 도무지 증발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냉장고 한구석에 고이 모셔둔 숙취 해소제를 꺼내 놀란 장기를 달래보려 시도했지만, 예민해진 식도는 그 액체마저 거부하며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퇴근 후, 어제 벗어둔 허물들이 널브러져 조금은 번잡한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문득 콩나물이라는 단어가 구원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콩나물 해장라면을 끓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장바구니를 챙겨 들고 마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스마트폰 액정을 이리저리 문지르며 낯선 조리법을 탐독했다. 그 조리법은 내가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못한 미지의 대륙과 같았다.

냉동고 서랍을 열자, 해장의 재료들이 저마다의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재료들은 마치 자신을 써달라는 듯, 내게 조용하지만 간절한 손길을 내밀었다. 냄비에 정량의 물 두 컵 반을 붓고, 붉은 라면 스프를 먼저 풀었다. 물이 끓는 소리를 낼 즈음, 콩나물과 면을 차례로 투하하고 냄비 뚜껑을 굳게 닫았다.

콩나물의 비린내는 역설적이게도 뚜껑을 닫아두르는 인내의 시간을 견뎌야만 냄비를 떠난다. 무언가를 떠나보내기 위해서는 탈출구를 막아야 한다는 이 모순된 진리 앞에서,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열기가 절정에 달하자, 콩나물들은 세상 밖으로 탈출하려는 죄수들처럼 냄비 뚜껑을 사납게 밀어 올렸다. 콩나물이 뒤엉켜 아우성치는 그 뜨거운 강물을 국자로 조금 덜어냈다. 나는 범람을 막는 치수관이라도 된 양 국물을 퍼 나르며, 요동치는 콩나물들을 진정시켰다.

붉은 국물 한 숟가락을 떠서, 여전히 소란스러운 내 위장 속으로 조심스레 밀어 넣었다. 처음 혀에 닿는 매콤하고도 시원한 구원에,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고춧가루가 점묘화처럼 뿌려진 면발 사이를 젓가락으로 헤집으며, 쓰라린 내 속을 달래줄 콩나물들을 하나씩 솎아내어 입으로 가져갔다. 

국물을 먼저 탐한 탓에, 그릇 안의 라면은 어느새 일본의 츠케멘처럼 국물 없는 자태로 변해버렸다. 본래 라면이란 허기진 빈속을 억지로 채워 넣는 가난한 음식일진대, 이 콩나물 해장라면은 독소로 가득 찬 내면을 오히려 깨끗하게 비워내는 정화의 의식 같았다. 

새로운 임상 실험에 성공한 화학자처럼 혼자 실없이 웃다가, 애초에 무리하여 나의 가여운 오장육부에게 사과할 짓 따위는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맛이 참 좋다. 그대도 한번 먹어봤으면 한다.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