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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회는 만선 바다에서

category tell_say 2018. 12. 16. 19:58
Jan 5. 2026

세상 어딘가에 고등어회를 혐오하는 종족이 서식한다는 비보를 접했을 때, 나는 호들갑을 떨며 경악했다. 타인의 취향을 존중해야 한다는 문화 상대주의적 교양 따위는 헌신짝처럼 내다 버리고, 철저한 자문화 중심주의자로 돌변하여 태세를 180도 전환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필시 육지 시내의 어느 횟집에서 파는, 종잇장처럼 얇고 비린내만 진동하는 가짜를 씹어본 불행한 피해자임이 확실하다. 제주도 현지에서 장인의 칼끝을 거친 진짜를 혀에 올려보았다면, 그 압도적인 맛 앞에서 무릎 꿇지 않을 도리가 없었으리라 장담한다.

적어도 고등어회라는 종목 앞에서만큼은, 나는 자문화 중심주의를 넘어 문화 제국주의적인 폭력을 행사하고픈 충동이 인다. 기본적으로 고등어회란, 태생적으로 미미(美味)의 유전자를 타고난 피조물이 아니던가. 이는 의심할 여지없는 만고불변의 철칙이다. 만약 고등어회가 맛이 없다면, 그 상황은 고등어의 존엄을 해치는 어떤 참사가 벌어졌다는 방증이다.


여름의 속도와 타인의 취향


여름이 당도하면 나는 밀린 월세를 해결한 세입자처럼 가볍게 제주도로 향한다. 비좁은 안장 위에 몸을 구겨 싣고 섬을 한 바퀴 돌며 습한 바람을 맞고, 바다를 눈에 넣으며, 음식을 통해 방전된 체력을 충전한다. 적당히 시원하고, 적당히 위장이 차오르며, 딱 그만큼의 적당한 행복을 탕진한다.

어쩌면 이런 행복을 좀 더 절실하게 감각하기 위해서라도, 육지의 학교로 복귀해 다시 노동의 멍에를 져야 했다. 노동의 피로가 담보되어야 휴식의 달콤함이 배가되는 이치였다.

M고에 근무하던 시절, 또래로 보이는 Y 교사에게 슬그머니 다가가 스쿠터 투어를 미끼로 던졌다. 혼자 달리는 길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씹을 안주가 있는 편이 덜 궁상맞을 거라는 얄팍한 계산이 섰다. 그러나 Y 교사는 나를 촌구석에서 건져 올리려는 계몽 운동가처럼 자유 여행과 마일리지의 효용을 늘어놓았다. 스카이패스인지 뭔지 하는 마일리지를 들이밀며,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 미국으로 날아갈 야망을 침 튀기며 열렬히 설파했다.

나는 황급히 화제를 제주도로 틀어야만 했다. 해외여행이라는 압도적 서사 앞에서 나의 패키지여행 이력은 너무나 초라한 소품으로 전락했다. Y 교사가 뱉어내는 화려한 미국행 티켓과 비교하면 나의 경험은 목 늘어난 러닝셔츠처럼 볼품없었다. "제주도는 스쿠터로 돌아야 제맛이죠."라고 나는 쏘아붙였다. 그 순간 Y 교사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고, 나는 그가 아직 밟아보지 못한 미지의 영토가 내게 있음을 직감했다.


미식이라는 이름의 신세계


나는 여름 스쿠터 투어의 복장에 대해 일장연설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수영복 위에 헐렁한 트레이닝 바지를 겹쳐 입고 달리다가, 바다가 보이면 허물을 벗듯 바지를 던지고 물속으로 뛰어들라는 나만의 생존 비기를 전수했다.

Y 교사가 끼니에 관해 물었을 때, 나는 적확한 단어를 찾지 못해 입안에서 웅얼거렸다. "대충 고기 국수나 때우고... 아무거나..."라고 말끝을 흐리는 치명적 실책을 저질렀다. Y 교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게 식도락이라는 신세계를 설파했다. 그에게 여행이란 단순히 허기를 면하는 연명 행위가 아니라, 미각을 통해 생의 환희를 맛보는 투쟁이어야 했다. 흑돼지와 제주 소주, 그리고 결정적으로 '고등어회'라는 단어가 그의 입에서 튀어나와 내 고막을 강타했다.

사석에서 처음 대면한 Y 교사와 나는, 바로 그날로 제주도 스쿠터 투어 작당 모의를 결의했다. '회로 먹는 고등어'라는 낯선 식감이 주는 호기심을 억누를 방도가 없었다. 여름이 오자마자 우리는 스쿠터에 몸을 싣고 서귀포 모슬포항 <만선 식당> 인근의 숙소로 맹렬히 쇄도했다. 매일 싱싱한 고등어를 낚아 올린다는 그 장인의 횟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과 밥과 양념의 삼중주


만선 식당의 상차림은 기묘하고도 영롱했다. 김 위에 짭조름한 양념이 밴 양파 조각과 찰진 밥을 얹고, 그 위에 오늘의 주연인 고등어회를 조심스레 눕힌다.

회란 응당 순수한 살점으로만 즐겨야 한다는 원리원칙주의자였던 내게, 이곳은 '회 쌈'이라는 파격을 가르친 참된 도장이었다. 강한 양념이 회 본연의 맛을 훼손할 거라는 나의 케케묵은 편견은 그 식탁 위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그것은 천상의 미미(美味)라 칭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육지에서는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혀뿌리까지 전율케 하는 맛이었다.

맛의 앙상블이 입안에서 폭죽처럼 터졌다. 자극적인 양념은 김과 밥이 부드럽게 감싸 안아 소멸시키고, 그 뒤로 고등어회의 쫄깃한 육질이 등장해 나의 미각을 낯선 황홀경으로 인도했다.


반복되는 경로의 위안


새로운 맛의 지평을 연 나는, 그 후로 매년 모슬포항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오직 만선 식당을 매일 출근 도장을 찍듯 가야 한다는 일념이 나를 잠식했다.

덕분에 나의 제주도 스쿠터 투어는 해마다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같은 궤적을 그렸다. 자동차 전용 도로를 달릴 수 없는 스쿠터라는 기동 수단에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했다. 공항에서부터 남쪽 중문까지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것이, 마치 형벌처럼 나의 고정된 루트가 되어버렸다.

지루함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익숙함이 주는 안도감과 고등어회의 감칠맛이 반복되는 풍경을 풍요롭게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육지의 횟집은 물론이고 제주도 내 다른 횟집도 내 시야 밖으로 밀려났다. 만선 식당의 맛과 다른 식당을 비교하는 일은 내게 일종의 신성모독에 가까웠다.


욕망과 현실 사이의 거리


초겨울 어느 날, 제주 연수원에서의 강의 의뢰 메일을 받고 내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여름이 아닌 계절에도 고등어회를 영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시켰다. 그러나 현실의 벽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강의 장소인 제주 시내와 식당이 있는 서귀포 사이의 물리적 거리감은 너무나 아득했다. 왕복 택시비만 8만 원이 나오는데, 이는 고등어회 한 접시 값을 상회하는 뼈아픈 출혈이었다.

나는 깊은 탄식을 내뱉으며 고등어회를 향한 욕망을 단념해야 했다. 낯선 제주의 밤길을 운전할 담력이 없는 초보 운전자의 비애가 내 발목을 잡았다. 시커먼 돼지고기와 멀건 국수 따위로 제주의 끼니를 때우자고 스스로를 기만하며 쓴웃음을 삼켰다.


뜻밖의 구원, 만선 바다


숙소에 짐을 풀고도 만선 식당의 고등어회가 눈앞에 어른거려 갈피를 잡지 못했다. 연인을 지척에 두고도 만질 수 없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지도 앱으로 습관처럼 '만선'을 검색하다가, <만선 바다>라는 상호를 발견했다. 이름이 흡사하여 짝퉁이 아닐까 의심했으나,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 사장님의 증언이 나를 구원했다. 그곳은 내가 그토록 숭배하는 만선 식당과 뿌리를 공유하는, 혈연관계의 분점이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택시를 잡아탔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씹겠다는 심정으로, 만선 식당의 유전자를 믿고 돌진했다.


블랙홀 혹은 우주적 미각


만선 식당과 판박이인 상차림에 고등어회가 내 앞에 당도했다. 기대와 불신을 동시에 품은 채 한 점을 집어 입안에 넣는 순간, 회는 식도 너머 미지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듯 자취를 감췄다.

나는 사장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만선 식당보다 훨씬 맛있다고 주책없이 울먹였다. 서귀포의 본점보다 밥에 밴 참기름 향이 짙었고, 무엇보다 가시가 티끌 하나 없을 만큼 완벽하게 제거되어 있었다. "사장님... 이거... 만선 식당보다... 훨씬... 더 맛있어요..."라고 나는 실토했다. 이것은 은하계를 초월한, 범우주적인 맛의 혁명이었다. 씹는 내내 입안에서 펼쳐지는 맛의 향연에 나는 백기 투항하고 말았다.


행복을 유예하는 법


사장님은 본점보다 더 많은 개량을 거쳤다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셨다. 마치 람보르기니와 페라리를 두고 우열을 가리는 듯한 자부심이었으나, 내 혀에는 만선 바다의 풍미가 더 깊게 각인됐다.

고등어회가 딱 한 점 남았을 때, 나는 추가 주문을 외치려는 욕구를 필사적으로 제어했다. 여기서 멈추어야 이 짜릿한 갈증을 품고 다음 달에 다시 제주를 찾을 명분이 생기는 법이다. 나는 즉시 Y 교사에게 전화를 걸어 이 벅찬 발견을 타전했다. "Y야, 새로운 베이스캠프를 찾았어."라며 상기된 목소리로 우리의 새로운 항로를 보고했다.


나만 알고 싶은, 그러나 모두가 알았으면 하는


Y 교사는 절대로 블로그에 올리지 말라고 내게 신신당부했다. 우리만의 아지트가 너무 유명해져서, 그 한적한 맛을 빼앗기게 될까 봐 전전긍긍한 까닭이다.

그럼에도 나는 심술궂은 청개구리처럼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만선 바다가 흥해야 그 원류인 만선 식당도 자극을 받아 서로 더 치열하게 맛을 벼려낼 거라는 믿음이 있다.

제주 시내에 만선 바다가 존재한다.

고등어회를 사랑하는 동지들이여, 부디 그곳으로 가서 만선 가득한 행복을 포획하기를 권한다. 그 맛은 당신의 계절을 고등어회 특유의 푸른 윤기로 가득 채워줄 것이라 장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