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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별과 만남의 경계에서


그릇 바닥에 자박하게 남은 국물이 작별을 재촉하는 야박한 인사처럼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 위장 깊은 곳, 어두운 웅덩이로 조용히 가라앉았다. 나는 국수가 스쳐 간 흔적조차 남기기 싫다는 듯 혀로 그릇을 꼼꼼히 훑었고, 뜨거운 김은 이빨 사이사이에 달라붙어 마지막 미련인 양 끈적하게 피어올랐다.

나는 습관적으로 휴대폰 캘린더를 띄워 서울행 비행기 시간을 확인하고는 머릿속으로 초조하게 동선을 그려보았다. 오전 열한 시에 서귀포 숙소를 빠져나와 엑셀을 밟는다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지언정 이 국수를 한 그릇 더 비워낼 시간을 벌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탑승 수속 마감까지 남은 시각과 서귀포에서 공항 근처인 이곳까지의 거리를 셈해보니, 물리적으로 아주 불가능한 도박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국숫값을 치르며 사장님께 무려 5년 만에 입을 떼어, 이 국수가 내 지난한 삶에 얼마나 각별하고 뜨끈한 위로였는지 짐짓 정중하게 털어놓았다. "사장님, 국수 면발에 자부심을 가지셔도 됩니다. 저는 오직 이 집 국수 한 그릇을 비우기 위해 바다를 건너옵니다."라는 나의 투박한 진심에 사장님은 쑥스러운 듯 깊은 미소를 지으셨다.

사실 내가 오로지 이 집 국수만을 위해 제주에 온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온전한 진실이라기엔 어딘가 구멍이 숭숭 뚫린 문장이다. 나는 이 집의 고기 국수와 더불어 만선 식당의 기름진 고등어회를 씹어 넘겨야만 비로소 제주라는 섬에 당도했다는 사실을 체감하곤 했기 때문이다. 사장님께서 보여주신 그 무구하고 솔직한 마음 덕분에, 나는 이 집의 간판과 위치를 나만의 비밀 금고에 숨겨두려 했던 얄팍한 욕심을 폐기처분하기로 결정했다. 나만 알고 싶어 꽁꽁 싸매두려 했던 이 고기국수집의 이름, '용담생국수'를 이렇게 활자화하여 세상에 내놓는 방식으로 내 마음의 노선을 틀어버린 결과다.


2. 계절의 상실과 잃어버린 맛


나의 여름 휴가는 무더위가 절정에 달해 없던 식욕마저 바싹 타버린 뒤에야 눈치 없는 불청객처럼 느릿느릿 찾아온다. 봄과 가을은 증발해버리고 여름과 겨울만이 길게 꼬리를 무는 21세기 한국의 기후가 내 휴가의 시계바늘마저 끈적하게 붙잡아 늘어뜨린 탓이다.

하지만 여름이 지루하게 늘어지는 상황이 내게는 오히려 반가운 신호다. 일 년 내내 동면하던 식욕이 유독 여름에만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그 징글징글한 더위를 버티고 살아갈 생을 지탱할 미약한 의지나마 지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귀한 식욕을 달래기 위해 위장과 침샘에 문신처럼 새겨둔 두 가지 메뉴, 고등어회와 고기 국수를 찾아 제주로 떠난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는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미각의 결핍을 메울 길은 오직 제주행 비행기 좌석에 몸을 구겨 넣는 방법뿐이었다.

고등어회를 잘하는 집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으나, 문제는 언제나 고기 국수집이었다. 제주도 고기국수를 다룬 블로그 포스팅들은 흡사 남의 기사를 무단 전재하는 '우라까이' 기사들처럼 영혼 없는 껍데기 같은 정보들로 넘쳐났으므로 내게 배신감만 안겨주었다. 머리카락 없는 캐릭터가 과장되게 놀란 표정을 짓는, 공장에서 찍어낸 공산품마냥 복제된 블로그 게시물을 보고 찾아간 곳은 하나같이 아이폰 출시일의 애플 스토어처럼 긴 줄만 똬리를 틀고 있을 뿐 맛은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긴 줄 끝에 받아든 국수는 면발이 마치 질긴 고무줄 뭉치를 씹는 식감이어서 도저히 목 뒤로 넘길 수가 없었다. 줄 서서 들어온 육지 사람들은 맛을 음미하기보다 인증샷을 남기는 노동에만 열중했고, 그 풍경을 보며 나는 반쯤 먹던 국수를 미련 없이 버리고 계산대로 향했다.

나는 제주도에 와야 할 이유의 절반이 날아갔다 여기며 서글픈 현실을 마주했다. 추억이 깃든 국수집들은 맛이 변질되거나 간판을 내렸고, 서울 시내의 흔해 빠진 고기 국수집들과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없게 되어버려 상실감이 컸던 탓이다.

결국 식당은 동네 사람에게 묻는 편이 최고라는, 낡았지만 확실한 진리를 온몸으로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사는 동네 먹자골목에서도 블로그 맛집보다는 슬리퍼 끌고 나온 주민들이 추천하는 곳이 진실에 가까웠던 기억이, 제주에서도 유효하리라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다시 여름휴가를 맞아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공항으로 마중 나온 스쿠터 대여점 사장님께 다급한 마음으로 물음을 던졌다. "사장님, 요즘 동네 분들 어디로 국수 드시러 가시나요?"라는 내 물음에, 사장님은 유명한 집들의 맛이 변했다며 혀를 차고는 '용담 생국수'를 일러주셨다.

나는 이것저것 메뉴가 산만하게 붙은 허름한 용담 생국수 가게에 들어서며 스쿠터 사장님을 전적으로 기대기로 했다. 여러 메뉴를 파는 집은 맛이 없으리라는, 내가 가진, 맛이 없으리라는 그 얄팍하고 속물적인 편견보다는, 동네에 오래 뿌리내린 토박이의 추천이 훨씬 무게감 있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3. 치유의 맛, 그리고 비밀의 맹세


국수 국물을 한 모금 넘기는 순간, 나는 쥐고 있던 젓가락을 고쳐 잡으며 안도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진득한 육수 맛은 아니었지만, 칼국수 면처럼 얇고 야들야들한 면발이 국물과 함께 입안에서 경쾌한 춤을 추듯 묘한 박자를 만들어냈다. 나는 더 이상 맛을 분석하려는 평론가 흉내를 그만두고, 그저 행복하게 춤을 추는 여행자가 되기로 작정했다. 고기 국수는 맛이 없다는 내 혀의 슬픈 결론을 용담 생국수가 말끔히 봉합해주었기에 더 이상의 설명은 군더더기일 뿐이었다.

나와 친구는 이 가게를 절대로 블로그나 SNS에 전시하지 말자고 맹세했다. 이 집마저 유명세를 치르고 맛이 변해버린다면, 우리는 더 이상 제주에서 마음을 누일 치유의 장소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앞섰기 때문이다. 새해 겨울 다시 찾은 국수집에서, 사장님은 고기 국수 외에 다른 메뉴를 팔 수밖에 없는 밥벌이의 구차함을 털어놓으셨다. 동네 사람들 대상으로는 국수만으로 가게 유지가 힘들다는 사장님의 꾸밈없는 진심에, '나만 알고 싶은 이기심'과 '가게가 잘되길 바라는 양심'이 내 머릿속에서 요란하게 다투기 시작했다.

소심한 교만으로 가득 찬 고민 끝에, 나는 용담 생국수가 다른 집들처럼 맛을 잃지 않으면서도 더욱 많은 사랑을 받아 오래도록 버텨주기를 빌기로 했다. 줄 서서 먹던 육지인들이여,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용담 생국수로 가라. 그곳에는 아직 거대 자본에 잠식되지 않은, 우리가 잊고 지냈던 제주 본연의 정직한 맛이 살아 있으니 가서 확인해보길 바란다.

(아, 정말이지 아직도 마음이 바람 앞의 갈대처럼 흔들린다. 영원히 나만 아는 곳으로 숨겨두고 싶은 욕심이 여전히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