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탐색은 너무도 괴롭다.
새 학기가 되면 3대 고문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죠. 담임 선생님께서 나눠주는 기초 생활 설문지. 이 설문지를 받아들면 자기 이름 한자로 쓰기가 그대를 괴롭힙니다. 대충 어디서 본 듯한 묘한 글자를 그려서 제출해 봅니다. 고등학생이 되었는데도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쓰는 것은 너무 힘든일입니다. 두 번째 고문은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써야하는 것이지요. 비슷한 고문으로는 특기를 써보세요 하는 질문입니다. 내가 뭘 잘하는지. 내 특기는 무엇인지 자신도 없고 알 수도 없기에 많은 친구들이 빈칸으로 설문지를 제출하고는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3대 고문
“자신의 장래 희망을 써보시오”
장래 희망이라니요. 지금도 희망없는 삶을 살고 있는데 앞으로의 희망을 쓰라는 것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하는 생각마저 든답니다. 장래 진로 희망을 쓰라고 하는 고문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됩니다. 아직 학교 생활에도 적응하지 못했는데 벌써부터 장래희망을 물어보는 것은 어쩌라는 것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렸을 때 어른들에서 가장 많이 들어보았던 질문도 ‘너 커서 뭐될래’였던 것 같습니다. 이거 살짝 비틀어서 들어보면 욕 듣는 기분이 들기도 하네요. ‘임마, 이래갖고 너 커서 뭐될래?’
언제부터 진로 탐색 그 자체가 우리에게 고문으로 느껴지게 되었을까요.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들이라고 합니다. 최근 통계를 살펴보면, 진로 탐색 직업 탐색에 대한 고민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답니다.
우리는 왜 진로탐색을 '고민'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환경에 던져졌을까요. 이건 왜 고민일까요. 우리가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하는 수준의 고민은 사실 고민이 아니죠. 굳이 이름을 붙여보면 행복한 고민 정도가 될 거에요. 진로 탐색을 통해 우리가 얻는 스트레스와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왜 진로 탐색은 '고민'일까요. 그것도 스트레스 덩어리인 고민일까요.
진로와 관련된 청소년들의 고민들. 그리고 진로를 포함한 청소년들의 고민들. 이런 고민들을 청소년들은 누구와 상담하고 있을까요.
청소년들은 자신의 고민을 나누는 대상으로 어른들 보다는 자기 스스로 또는 친구들과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인생의 선배로서 또 한명의 교사로서 안타깝기도 합니다. 특히나 진로와 관련된 고민은 친구들과의 대화도 중요하지만 먼저 인생과 세상을 경험해 본 어른(멘토)과 함께 고민을 나누는 것이 중요할텐데 말이죠.
청소년 친구들에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소개해 보라고 하면 어떤가요. 몇 몇 친구들은 자신있게 자기에 대해서 소개해보지만 보통은 쑥스럽죠. 그리고 계속 소개를 강요하면 어떨까요. 쑥스러운 것이 아니라 아예 할 수 없다고 느끼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진로 탐색에 가장 중요한 첫걸음들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을 소개하는 겁니다. 자신을 이해하고 있어야 소개도 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소개하는 훈련을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나도 모르는데 앞으로의 나는 또 어떻게 안단 말일까요.
결국 우리는 좋지 않은 진로 탐색 루트를 따라가게 됩니다.
('2. 진로 탐색의 안좋은 버전들'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