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점 한점 > 은전한닢_피천득글
내가 학교에서 본 일이다. 선배 교사 하나가 교장에게 가 떨리는 손으로 보고서 한 묶음을 내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보고서가 근평에 못쓰는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 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프로포즈하고 나서 잡아 놓은 전세집을 날리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과 같이 교장의 입을 쳐다본다.
학교 '주인'은 교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보고서를 두들겨 보고
"좋소."
하고 내어준다.
그는 '좋소'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보고서를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 넣고 절을 몇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보며 얼마를 가더니, 학생부장을 찾아갔다. 품 속에는 여러 상담일지가 가득했다. 함참 꾸물거리다가 그 상담일지를 내어 놓으며
"이것이 학교 폭력 가산점에 쓰일 수 있는 상담일지이오니까?"하고 묻는다.
학생부장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보더니,
"이 많은 아이들을 언제 다 상담했어? 이거 가짜아닙니까?"
교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맞습니다요. 맞습니다요"
"그러면, 이 애들을 다 상담했단 말이냐?"
"누가 이렇게 자기 시간 허비하면서 가라로 상담일지를 만든단 말입니까요. 일지를 어서 도로 주십시오"
교사는 손을 내밀었다. 학생부장은 웃으면서
"좋소"
하고 던져 주었다.
그는 얼른 집어서 가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 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선다.
서서 그 보고서와 일지들이 빠지지나 않았나 만져보는 것이다.
거친 손가락이 낡은 종이를 쓰다듬을 때 마다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연구부장 자리로 스윽 찾아 들더니
부장 책상 옆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서 뭔티티피 교안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열중해 있었는지 한량 교사인 내가 가까이 선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거 다해서 뭐하는데 쓴답디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허셋 소리에 움찔하면서 보고서를 황급히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서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저는 승진따윈 개나 줘버려입니다"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구라가 아닙니다. 하지도 않은 일들을 적은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교사에게 관리직 자리를 줍니까? 근평 한점, 가산점 한점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가산점 한점 주시는 분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한 점 한 점 얻은 점수에서 가산점 몇 덩어리를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은 가산점을 성과급과 바꾸려고 합니다. 이러기를 여러번을 하여 겨우 평타를 치게 되었습니다. 이 등급을 얻느라고 여섯달이 걸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등급과 가산점을 모으려 한다 말이오? 그 점수로 무얼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점수 하나가 갖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