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 봉 > 원작 봄봄 (김유정)
“사장님! 인제 저....”
내가 이렇게 뒤통수를 긁고, 연식도 찼으니 정규직 전화를 시켜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 대답이 늘, “이 자식아! 정규직이고 뭐고 좋아져야재!”하고 만다.
이 좋아져야 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국민 경제’ 또는 ‘경기’를 말한다.
내가 이 회사에 비정규직으로 와서 열정 페이만 받고 일하기를 일년하고 꼬박 두달 동안을 했다. 그런데도 회사 사정이, 나라 경제가 못 좋아졌다라니까 경제라는 것이 언제야 좋아지는 겐지 짜장 영문 모른다.
일을 좀더 잘해야 한다든지, 혹은 식대 달라고 징징거리지 말라야 한다든지 하면 나도 얼마든지 할 말이 많다.
하지만 나라 경제가, 회사 사정이 아직 안좋으니까 더 좋아져야 한다는 이야기에는 어째 볼 수 없이 고만 뱅뱅하고 만다.
이래 나는 애초 계약이 잘못된 걸 알았다. 이태면 이태, 삼년이면, 삼년, 기한을 딱 작정하고 일을 해야 원할 것이다. 덮어놓고 나라 경제가 좋아지면, 회사 사정이 좋아지는 대로 정규직으로 채용해 주마 했으니, 누가 늘 지키고 섰는 것도 아니고, 그 경기라는 것이 언제 좋아지는지 알 수 있는가. 그리고 난 이리 회사가 잘되는데 있던 직원들 월급은 제자리인 것을 누가 알았으랴. 때가 되면 사장님이 어련하랴 싶어서 군소리 없이 꾸벅 꾸벅 일만 해왔다.
그럼 말이다. 사장님이 제가 다 알아채서 “어 참 너 일 많이 했다. 고마 채용해주마”하고 책상도 내주고 해야 나도 좋을 것이 아니냐.
시치미를 딱 떼고 도리어 그런 소리가 나올까 봐서 지레 펄펄뛰고 용역 업체 전화번호를 외우며 이 야단이다. 명색이 좋아 비정규직 직원이지, 일하기에는 정규직 직원과 같을뿐더러 이건 참 아무것도 아니다.
밥값, 기름값, 지하철 값, 버스 값은 이리도 잘 자라는데, 왜 이리도 나라 경제는 안좋은 건지, 한동안 머리가 아프도록 궁리도 해보았다.
아하, 내가 세금을 제대로 안내니까 이리도 나라가 움츠리는갑다, 하고 열심히 소주도 마셔보고 담배도 펴보았다. 아하, 내가 열심히 스펙을 쌓지 않았나 보다 해서, 영어 학원도 댕겨 보고, 회사 마치고 다니던 편의점 알바도 그만두고 봉사 활동에 서포처즈 활동에 열을 올렸다. 밤마다 서냥당에 돌을 올려 놓고 나라 경제 좀 좋게 해주시오, 회사 사정 좀 좋게 해주시오, 하고 치성도 한두번 드린 것이 아니다. 어떻게 되먹은 긴지 이래도 막무가내니.....
출근해서 회사 짐을 나르다 머리가 너무 아파 털썩 주저 앉았다. 어제부터 몸이 으스스한 거이 수상혀 편의점에서 약 몇 알 사와 입에 털어 넣을까 사장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사무실 가운데서 사장님도 이상한 눈을 해가지고 한참 날 노려보더니, “넌 이 자식, 왜 또이래” “머리가 좀 아퍼서유”하고 휘청했다. 의자에 앉자 큰소리로 소리를 치는 것이 아닌가.
“이 자식. 일 허다 말면 누굴 망해 놀 속셈이냐. 아프니까 청춘아니여!”
사장님이 큰 소리치고 밖으로 나가자 옆 자리 하청업체 파견 형아가 빈정거리는 것이 아닌가.
“저 소리 듣고도 그걸 가만 둬?”
“그럼 어떡허요”
“임마, 나 때려 치겠소 하고 서류 더미 얼굴에 집어 던지고 때려쳐야지 뭐혀. 밤낮 일만 해주구 있을테냐?”
“그럼 우찌란 말임까. 이 인리도 겨우 얻었는디”
“요 앞에 있던 비정규직애는, 무려 십년을 있다가 지가 지쳐서 퇴사혔지. 그 앞에 있던 사람은야, 계약 해지를 밥먹듯이 하는 사장놈 노동부에 신고했다가 되려 두들겨 맞고 쫓겨났지 뭐냐. 그리고 말이냐, 요요요 앞 직원은야, 밀린 월급 달라고 신고했다가, 저 사장놈이 십원짜리로 밀린 월급을 죄다 뿌렸지 뭐냐”
우리 사장님은 정규직 직원은 셋이요 비정규직 직원은 열이요 하청 업체 파견 근로자가 스물이었다. 이 정규직 직원도 정말은 정규직이 아니라 중규직으라고 하는데 당췌 그것이 뭔지는 모르겄다. 사장님이 정규직은 없고 비정규직에 파견업체 직원들만 있는 고로 그담 정규직을 뽑을 때까지는 열심히 요 사람들을 부려먹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인턴을 두면 좋지만 인턴들은 여기 저기 신고를 많이할지 모른다며 안 뽑는다 했다.
내가 일도 잘하고 그리고 사람이 좀 어수룩하니까 사장님이 잔뜩 붙들고 열심히 희망고문을 해된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머리가 낫지를 않고 인자는 배까지 쿡쿡 쑤시듯 아팠다. 너무도 아파 그대로 책상에 쿡 하고 고꾸라졌다.
원래 이 즈음에서 머슴이라면 점순이를 믿고 장인님에게 들이 박을턴디, 원작도 그렇고 그 즈음에서 제편이라 믿었던 점순이, 그러니까 여기서는 옆자리 하청업체 파견 근로자 형아도 별 힘없이 사장님 편 들 것 같고, 구장은 말이라도 머슴 편 들지만 서도 나랏일 하시는 분들이 어혀 내 말 들어줄 것 같지도 않아, 진통제 먹고 다시 일어났다.
“이 자식! 회사가 아프러 오는데여? 일하기 싫으면 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