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바빠, 현대인에게 커피는 더 이상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커피는 아침을 깨우는 숭고한 의식이자, 의미 없어 보이는 일상의 고단함을 버텨내게 하는 연료이며, 때로는 그저 그런 수다에 지적 미학을 부어주는 윤활유다. 갓 분쇄된 커피 원두가 뜨거운 물과 조우하여 피어오르는 그 특유의 짙은 향기, 입안을 가득 채우는 쌉싸름한 산미와 쓴 맛. 우리는 이 시커먼 액체와 매일 동행한다. 하지만 이 동행은 때로는누군가에게 혹독한 대가를 요구한다. 내일을 위해 자야만 하는 한밤. 말똥말똥한 눈으로 불면과 싸워야 한다. 멈추지 않는 심장의 펌프질에 이러다 죽는 사태는 아닌지 공포에 떨어야 한다.
불면과 심장 폭동에 고통받는 이를 위해 인류는기묘한 역설을 창조했다. 디카페인 커피. 이름부터가 모순으로 구성되었다. 카페인 없는 커피. 이 창조물의 이름 짓기 방식은 알코올 없는 소주, 시원함이 제거된 냉면, 차가운 온돌, 짠맛 없는 소금과 같다.
누가 이 기특하고도 난해한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구현해냈을까. 커피의 심장인 카페인을 도려낼 생각을 했을까. 그럼에도 어떠한 마법을 부려 커피의 맛과 향은 남겨두려 애썼을까. 이 마법사가 어떻게 연금술을 연구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도 던져본다. 왜 어떤 사람은 한밤중에 진한 에스프레소를 연이어 마셔도 숙면을 취할 수 있고, 왜 나는 한낮의 디카페인 한잔에도 불면증에 시달려야만 하는가.
나는 이 모순된 커피의 연대기를 찾아보았다. 그 호기심은 아마도, 커피를 마시고 싶지만 한 잔의 음미에 한밤의 숙면을 포기해야만 하는 나약한 내게 유일한 대안인 디카페인 커피에 대한 애정 때문에 생긴 호기심이었다. 비극과 우연이 연출한 디카페인 커피의 발명부터, 내 간에 숨겨진 유전적 비밀을 알고 싶었다. 홍철 없는 홍철팀, 카페인 없는 커피.디카페인 커피는 언제 그리고 왜 탄생했을까.
디카페인 커피의 발명은 독일의 대문호괴테의 불면에서 시작되었다. 19세기의 어느 날, 괴테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괴테는 화학자 프리드리히 룽게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하는지 알고 싶네.” 룽게는 여러 연구 끝에 커피콩에서 하얀색 결정-카페인을 분리하는 데 성공한다. 종교적 신비가 아니라 분리 가능한 물질의 소행으로 불면이 찾아왔음을 밝혀낸 순간이었다.
1903년 독일의 커피 상인이었던루드비히 로젤리우스는 아버지의 죽음에 괴로워했다. 로젤리우스는 아버지의 죽음이 과도한 커피 섭취가 원인이었다고 굳게 믿었다. 그리하여 로젤리우스는 더 안전한 커피를 찾아내고자 애썼다. 어느 날, 배에 커피 원두를 가득 싣고 운항 중이었다. 그러다 그만 그 귀한 커피 원두가 바닷물에 빠지는 사고를 겪었다. 상품 가치가 훼손되어 버려야만 했지만 로젤리우스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바닷물에 젖은 커피콩을 볶아 커피를 내렸다. 이럴 수가. 커피의 맛은 거의 그대로인데 문제가 되었던 각성 효과가 사라진 사실을 발견했다. 로젤리우스는 안전한 커피를 만들 수 있다는 기쁨에 공정 기술을 개발했다. 하지만 로젤리우스의 디카페인 커피 공정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카페인을 녹여내기 위해발암물질인 벤젠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커피의 각성 효과를 없애려다 암을 불러올 독약을 만들 판이었다.
인류는 더 안전한 해답을 원했다. 인류의 과학과 기술은 발전해 나갔고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그 해답은 바로 물이었다. 1933년 스위스에서 개발된스위스 워터 프로세스는 화학 용매 대신에 오로지 물과 활성탄 필터만을 사용해 카페인을 제거하려 시도했다. 그리고 현대 과학은 초임계 이산화탄소라는 첨단 기술을 사용해 안전한 해답을 찾아냈다.
이 발전된 공정은 복잡했지만 더 안전한 커피를 생산할 수 있었다. 스위스 워터 방식은, 먼저 원두를 물에 담가 카페인과 향미 성분을 모조리 뽑아낸다. 이 물에서 탄소 필터를 사용해 카페인만 걸러내면 향미 성분으로 가득 찬 물이 남는다. 여기에 새로운 원두를 담근다. 그러면 물은 이미 향미로 포화 상태이기 때문에 원두의 향미는 빼앗지 못하지만,농도 차이로 인해 새 원두의 카페인만 뽑아낸다. 뭔가 복잡하지만 커피 한모금에 밤잠을 설치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아름다운 공정 방식인가.
초임계 이산화탄소 방식은 더 복잡하고 더 우아하다. 이산화탄소에 압력과 온도를 가해, 액체도 아니고 기체도 아닌 초임계 유체 상태로 만든 후에 카페인만 골라 녹여내는 선택적 용매로 사용한다. 여기에 현대 과학은사탕수수 발효액으로 카페인을 녹여내는 슈가케인 공법도 고안했다. 자연친화적이며 낭만적이다. 발암의 시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벤젠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었다. 늦게 태어나서 행복했다.
인류는 그렇게, 오해와 삽질과 과학 발전 덕에 더 안전한 커피를 얻었다. 하지만 안심은 이르다. 저지방 우유는 무지방 우유가 아니다.디카페인은 무카페인이 아니다. 디카페인이 디카페인으로 인정받으려면, 카페인이 얼마나 남아있어야 하는지 기준을 살펴보아야 한다. 유럽연합은 99% 이상 카페인을 제거해야 디카페인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미국은 97%, 내 나라 한국은 90%만 카페인을 제거해도 디카페인으로 인정한다. 단순히 계산해보면 내가 마시는 K-디카페인 커피는, 유럽의 디카페인 커피보다 카페인을 10배나 많이 품고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는 10퍼센트 남은 카페인에도 밤잠을 설쳐야 한다. 디카페인 커피도 아침이나 이른 오후까지만 마실 수 있다. 초저녁 이후에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게 되면 그날 잠은 다 잤다고 각오해야 했다. 왜 나는 맛있는 진짜 커피를 마실 수 없을까. 그리고 이 가짜 커피마저도 시간 제한을 걸고 마실 수 있을까.
범인은 내 유전자안에 있다. 애초에 카페인은 뇌의 피로 물질인 아데노신이 자리 잡고 있는 전세집을 빼앗은 후에, “이제 괜찮아~ 너는 피곤한 게 아니야~”라며 뇌를 속이는 치명적인 사기꾼이다. 그런데 우리 간에는CYP1A2라는 카페인 분해 효소가 있다. 사기꾼 카페인을 내쫓아 내는 클럽 가드 역할을 한다. 이 분해 효소를 얼마나 잘 만들어내느냐 못하느냐는 전적으로 유전자에 달렸다. 카페인을 강렬한 속도로 분해하는빠른 대사자로 태어나느냐, 하루 종일 밤새 카페인을 붙들고 살아가야 하는느린 대사자로 태어나느냐는 오로지 조상님들이 물려주신 유전자에 달렸다. 느린 대사자로 태어난 사람은 저녁 커피 한 잔이 새벽 내내 혈관을 타고 흐르는 카페인의 유람을 강제로 목격해야 한다.
디카페인 커피는 유전적으로 손해 보며 살아가는 느린 대사자들을 위한 현대 과학의 자비이자 축복이다. 느린 대사자로 태어난 유전적 동지들이여. 인류의 무한한 도전 정신과 현대 과학의 발전에 감사하자. 카페인 없는 커피 한잔 손에 들고 우아하게 수다를 나눠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