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이 있던, 그 시절의 학생부 징계 담당 교사의 기억.

한우가 익어가고 있었다. 불판 위에 널브러진 포유류의 조각난 사체. 나는 그것을 보며 '보상'에 대해 생각했다. 학생 생활지도 연구 학교인지 실험 학교인지, 아무튼 그 알 수 없는 타이틀 덕에 소모된 나의 에너지를 이 단백질 덩어리로 보상받으려 했다. 초임 교사는 가난했다. 그 시절, 한우는 닿을 수 없는 이상향, 그림의 떡이었다.
한우가 익었다. 불판 위에 곱게 피어오른 회색 꽃잎이 나를 불렀다. 장유유서. 유교 사회의 룰은 명확했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면 뜨거운 한우는 말할 나위도 없었다. 교육청 아저씨들과 학생부장이 먼저 젓가락을 들면, 그다음이 내 차례라고 생각했다. 학생부장이 쿨하게 소주병을 땄다. 창밖은 거친 빗소리. 완벽한 BGM이었다. 잘 익은 한우, 채워진 소주, 그리고 적절한 습도. 이럴 때를 위해 '주마등'이라는 클리셰가 존재하는구나, 싶었다. 젓가락을 들어 내 몫의 조각을 집으려던 그 찰나, 지난 생고생의 필름이 돌아갔다. 나를 스쳐 간 200여 명의 교내봉사. 그들의 옷깃에 밴 담배 냄새, 슬리퍼의 흙먼지, 출석부의 동그라미, 그들의 주먹과 목젖. 그 모든 데이터가 빠르게 지나갔다. 이제 이 모든 고단함이 저 한우와 함께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사라질 차례였다.
행복했다.
적어도 학생부장의 핸드폰이 울리기 전까지는.
단기적 행복은 그렇게 끝났다.
"아. 네. 네. 그러시군요. 으흠. 네. 네. 알겠습니다."
학생부장은 전화를 끊고 나를 쳐다봤다. 선도(징계) 담당. 초임 교사. 바로 나. 아, 이럴 땐 시선을 피해야 했는데. 그의 눈빛에서 모든 시나리오를 읽어버린 나는 젓가락을 멈추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부장은 내 눈을 피했고, 아저씨들은 내 눈치를 봤다. 나는 식어가는 한우를 짧게 응시한 뒤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새로 산 정장 재킷을 입었다.
"안 샘. 우산은 있어?"
식당 주인에게 빌리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머피의 법칙'은 언제나 작동했다. 식당 주인은 남는 우산이 없다고 했다.
식당 밖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쏟아지는 폭우. 우산 없이 20분을 걸어야 하는 징계 담당 교사. 이보다 더 처량한 신파극이 있었을까. 새로 산 정장이 빗물을 빨아들이며 찢어질 듯 무거워졌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20분을 걸었다. 목적지는 우리 학교 바로 옆 중학교 학생부.
그곳에 우리 학교 남학생 둘이, 나만큼이나 흠뻑 젖은 몰골로 앉아 있었다.
옆 중학교 학생부장이 요약 브리핑을 해주었다. 오토바이. 중학교 앞. 승용차. 추돌.
여기까지는 평범한 교통사고였다. 그런데 왜 이들은 병원이 아니라 여기에 있나?
사고가 나자, 두 녀석은 오토바이을 버리고 중학교 운동장으로 튀었단다. 피해자가 뺑소니라니, 이 얼마나 기막힌 전개였던가.
"훔친 오토바이라네요?"
아하. 퍼즐이 맞춰졌다.
창밖의 비는 이 부조리한 연극의 극적 효과를 높이려는 듯 더 거세졌다. 중학교 학생부장은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퇴근. 나는 죄송하다고 말하고 녀석들을 끌고 나왔다. 다시 폭우 속으로. 우산 없이. 그리고 무엇보다, 한우 없이.
새로 산 정장이 젖어갔다. 한우를 향한 나의 식도, 나의 원초적 허기도 빗물에 젖어갔다. 녀석들은 고개를 숙인 채 나를 따랐다.
이제 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어떤 벌을 주어야 이 게임이 공정하게 끝날까. 체벌이 존재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어디를 어떻게 공략해야 아이들이 '반성'이라는 아웃풋을 내놓을까. 한우를 향한 나의 순수한 욕정이 '분노'로 치환되어, '교육'이 아닌 '폭력'이 되어서는 곤란했다. 나는 한우를 먹고 싶지 않다, 고 자기 최면을 걸었다. 젖어가는 정장과 식어가는 한우 사이에서, 내 이성이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가벼운 접촉 사고. 하지만 몸은 다쳤을 수 있었다.
만약 다친 부위에 무리를 가한다면? 그건 '교육'이 아니라 '상해'다. 비효율적이고 리스크가 컸다.
나는 가던 걸음을 멈췄다.
녀석들도 멈췄다. 내 뒤통수를 조용히 쳐다봤다.
고개를 돌려, 모든 감정을 억누른 채 입을 열었다. 쏟아지는 폭우가 완벽한 방음벽이자 가림막이 되어주었다.
"어디 다친 데는 없어?"
데이터가 필요했다. 정확히는 '타격 가능 부위'에 대한 데이터. 다친 곳을 알아야 그곳을 피해서 '합리적인' 벌을 줄 수 있으니까. 나는 합리적인 교육자였다. 적어도 그 순간엔 그렇게 믿었다.
아이들은 멈칫했다. 대답을 망설였다. 하긴, 교통사고가 막 난 사람에게 안 다친 곳이 어디인지 묻는 질문만큼 어리석은 질문도 없었으리라.
그렇게 셋은 다시 말없이, 10여 분을 빗속을 뚫고 학생부에 도착했다.
확인서를 쓰고, 부모에게 연락했다. "일단 병원 가. 그리고 내일 다시 학생부로 와."
병원에서 '이상 없음'이라는 데이터를 확보하면, 그때가 2라운드 시작이었다.
서류를 처리하는 사이, 한우집은 상황이 종료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나의 첫 한우와 소주는 그렇게 폭우 속으로 사라졌다.
그 남학생 둘은 몇 주 뒤, 이번엔 '흡연'이라는 다른 장르로 다시 나타났다.
선도 대상 80여 명, 담당 교사 나 혼자. 그들이 특별히 눈에 띌 리 없었다. 그럴 여유도 없었고.
선도 1일 차. 과학실. 반성문 쓰기.
밤은 깊고 몸은 피곤했다. '작가'들이 하나둘 탈고하고 과학실을 나갔다. 그 두 녀석은 끝까지 남아 원고를 썼다. 시계를 봤다. 집에 가고 싶었다. 당신들이 원고를 끝내야 내 퇴근이 보장된다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그냥 가라고 했더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20분 뒤, 녀석들은 반성문을 놓고 도망치듯 사라졌다.
도대체 무슨 대작을 썼길래. 원고를 읽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기억의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했다. 그리고 다시 원고를 읽었다. 헛웃음이 났다.
"선생님은 이제껏 만난 선생님 중에서 가장 학생들을 사랑하고 아껴주시는 선생님이라 느꼈습니다."
그럴 리가. 내가?
"그날 굉장히 화가 많이 나셨을 텐데 저희에게 화를 안 내시고 오히려 어디 다친데 없냐고 물어봐 주셔서 너무 감동받았었습니다."
원고를 내려놓고 의자를 뒤로 젖혔다.
세상은 이토록 부조리한 연극이었나.
'합리적 처벌'을 위한 나의 냉정한 데이터 수집 질문이, 이 아이들에게는 '숭고한 사랑'으로 번역되었단 말인가.
커뮤니케이션이란, 결국 오해의 총합이다. 교사의 말 한마디가 이런 식으로도 작동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만약 그날 내가 화부터 냈다면?
테이블 위의 굵은 회초리를 보았다.
어쩌면 나의 '무서운 교사'라는 기존 브랜드 이미지가, 이 낯선 '친절'의 진정성을 보증해 준 셈일까. 원래부터 친근했다면? '역시 만만한 선생'이라며 나를 더 무시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나온 사건, 사건, 사건들. 그 조각난 장면들.
새로 산 정장 재킷을 입고 학교를 나섰다.
말 한마디가 민원이 되고, 추억이 되고, 상처가 된다면, 이왕이면 '기분 좋게 혼내는' 멘트를 연구하는 편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나는 그때 생각했다. 일종의 '생활지도 R&D'인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