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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할 기회를 빼앗긴 너에게


고독할 기회. 뭔가 00 월드 허세에서 본 듯한 말인가요? 손발이 오그라드는 감정이 올라오나요? 네 맞습니다. 우린 좀 오그라들 필요가 있답니다. 사춘기를 사춘기답게 보내지 못하면 후폭풍 어마어마하게 밀려올 거에요.


사춘기. 사춘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정의들이 많습니다. 그 모든 정의 다 맞는 말이에요. 거기에 한 가지만 더 얹어볼게요.

사춘기란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어떤 욕망을 갖고 어떤 가치관을 따르고 있는지 찾고 또 만들어 보는 기간. 그 과정에서 주체성을 가진 한 사람이 되는 과정이지요. 그러니까 ‘나’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는 많은 대화와 소통이 필요해요. 친구, 부모님, 선생님, 선배들. 그리고 두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일상생활에서는 만나기 힘든 ‘멘토’ 그리고 나 자신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만나기 힘든 ‘멘토’란 책 속에서 만나는 경우가 많죠. 동시대의 사람일 수도 있고 먼 옛날 사람일 수도 있지요.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저자와 대화한다는 것을 말해요.

나 자신과의 대화는 일기만큼 좋은 게 없답니다. 거울을 보거나 허공에다가 웅얼웅얼 대화하는 모습은, 조금 그렇잖아요?


오늘은 나 자신과의 대화를 이야기하고자 해요.


탤짱샘 학창 시절을 떠올립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재학시절 집에 컴퓨터가 있는 친구는 거의 없었답니다. 컴퓨터가 있어도 거실에 한 대, 자기 방에 컴퓨터를 가진 경우는 거의 없었답니다. 저도 컴퓨터를 처음 갖게 된 것은 대학생이었던 형님이 컴퓨터를 장만하면서 잠깐잠깐 사용해 볼 수 있었지요. 사춘기 질주 타임이라 할 수 있는 중학생 시절에는 컴퓨터를 구경하는 것조차  힘들었답니다.


삐삐. 응답하라 1997, 1994 드라마를 통해 본 적 있죠? 당시에 삐삐를 갖고 다닌 친구들도 매우 적었답니다. 고등학교 끝자락 가서야 조금씩 보급이 되었으니까요.


집 전화는 안방에 한 대 거실에 한 대 있었죠. 휴대전화기? 꿈도 꿀 수 없었죠. 휴대전화기는 사장님들이나 갖고 다니는 귀한 물건이었으니까요.


자, 그러면 한번 장면을 상상해 볼게요. 허리에는 삐삐도 없고 손에는 휴대전화기도 없고 방에는 전화기도 없고 컴퓨터도 없습니다. 학교 다녀오면 방으로 들어갑니다. 문이 닫히면? 어떻게 될까요? 문이 닫히는 순간 세상과 나는 단절되는 것이지요.


책상에 앉아 봅니다. 일단 복습이나 해보자 교과서를 꺼내봅니다. 잘 되는 날은 참 잘 되는데 공부라는 것이 매일 잘될 일도 없고 또, 그냥 잘될 일도 없죠. 그러면 무엇을 할까요. 삐삐도 없고, 아무것도 없네요. 두리번두리번 묵혀둔 책을 열어 봅니다. 만화책이라도 보면 이미 다 본 만화책들뿐이네요. 한 번 더 읽어 봅니다. 본 만화 또 보고 또 보다 보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이곤 합니다. 아하 주인공은 이래서 이랬구나. 맞수는 혹시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닐까. 앞으로 이런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을까. 혼자 상상해봅니다. 다시 두리번두리번 거립니다. 시집이 보이고 소설책이 보이고 뭔가 책들이 보이네요. 한번 펼쳐봅니다. 지루하긴 하지만 달리할 것이 없으니 이거라도 봅니다. 공부보다는 재밌으니까요.


글자들만 죽 늘어져 있으니 장면을 상상해 봅니다. 장풍이 나가는구나 하늘을 휘젓는구나. 소설책을 잠시 내려 놓고 시집을 펼칩니다. 여전히 글자들만 죽. 그래도 소설 보다는 읽는 박자가 좋아 따라 읽어 봅니다. 이런저런 책들을 읽다가 너무도 멋진 구절이 보입니다. 아 이거 친구들에게 나누고 싶은데, 전화기도 방에 없네. 친구에게 전화한다 해도 전화 요금 비싸다고 혼날 것 같아요. “용건만 간단히” 청소년 시절 전화기 들때마다 듣던 말입니다.


책을 좀 더 읽어 보다가 뭔가 내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잠시 멈춥니다. 벽을 봅니다. 뭔가 막, 말하고 싶습니다. 나도 대답하고 싶어지죠. 그리고 이 글에서 영감을 얻은 뭔가 또 다른 생각이 자꾸 솟아오릅니다. 하루가 반성이 되고 앞날이 보이고 자신이 보입니다. 그러면, 그렇죠. 그때 일기장을 꺼내봅니다. 아무도 읽지 못하게 숨겨 놓은 일기장. 그리고 샤프를 들고 지금 읽은 구절을 옮겨 적어봅니다. 그리고 내 느낌, 내 다짐, 내 생각, 내 반성, 내 분노, 내 슬픔, 내 관계, 내 미래, 내 옛일을 적고 또 적습니다.

그리고 예전 일기들을 꺼내서 읽어봅니다. 왜 그때는 이런 생각을 느꼈을까. 이때는 왜이랬지? 나는 이때 다짐을 왜 지키지 않지? 하며 나를 돌아봅니다.


그러면, ‘고독한 시간’은 나를 찾는 시간이 됩니다. 그 경험들이 조금씩 조금씩 쌓이며 나를 만들어 갑니다.


어른이 되고 나면 일기를 쓰는 것이 예전만큼 쉽지 않습니다.


자, 이제 우리 모습을 돌아볼게요. 집에 들어갑니다. 방문이 닫히는 순간? 그때부터는 세상과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세상과 이어지게 됩니다. 컴퓨터를 켜고 검색을 하거나 SNS를 하거나 게임을 합니다.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봅니다. 컴퓨터가 거실에 있다면? 그러면 뒹굴 누우면 됩니다. 여기서 카톡, 저기서 카톡, 알림, 알림, 00캐스트, 00몬, 000북, 000스토리, 000그램.


뭔가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러면 스스로 몇 번 되씹을 겨를도 없이 냉큼 SNS에 일기를 씁니다. 친구 공개라고 하지만, 참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내 일기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도 아닌 ‘방백’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댓글 댓글 댓글을 보면서, 뭔가 후련하고 뭔가 대접받는 느낌을 누립니다.


고독할 기회를 스스로 빼앗기는 순간입니다.


나를 돌아보고 다듬고 더 깊은 고민을 갖고 ‘좀처럼 만나기 힘든 멘토’들과 대화할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게 됩니다.


삶, 인생, 성장에 대해 조금이라도 질문을 던져 보려 하면 ‘진지충 납셨네’하며 서로 장난치듯 비웃기까지 합니다. 이건 아닙니다. 정말 아니지요.


같은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는 프랑스의 대입 시험문제를 살펴봅니다.

1장 인간(Human)


Q1-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Q2-꿈은 필요한가?

Q3-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Q4-지금의 나는 내 과거의 총합인가?

Q5-관용의 정신에도 비관용이 내포되어 있는가?

Q6-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

Q7-행복은 단지 한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인가?

Q8-타인을 존경한다는 것은 일체의 열정을 배제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Q9-죽음은 인간에게서 일체의 존재 의미를 박탈해 가는가?

Q10-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나?

Q11-행복은 인간에게 도달 불가능한 것인가?



우리는 이 질문 중에 얼마나 ‘내 생각’을 말할 수 있을까요. 학원에서 달달달 외운 답이 아니라 ‘내 생각’ ‘내 답’ 얼마나 꺼낼 수 있을까요.


청소년 후배 여러분. 여러분의 삶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내 삶을 살아가는 ‘나’를 찾아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금 반드시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히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답니다. 스마트폰, 참 좋은 기계이지요. 그렇지만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고독할 기회’를 스스로 만들고 누리길 바래요. 알았죠? 지금 해봐요. 누려라! 청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