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냉면은 맛있다. 밍숭 맹숭해서 도대체 국물에 무슨 짓도 안하고 아무 짓도 안했는지 의심스러운 평양 냉면은 맛없다. 저 멀리 평양 거대한 마을 마을에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앞으로 우리 평양시에서 냉면 맛은 이것으로 정한다 했는지 궁금하다.
집집마다 된장찌개 맛이 다 다른데 평양에 사는 사람들 집집마다 냉면 맛이 하나같이 이 모양이었을까 생각해본다.
칡냉면은 맛있다. 칡냉면에 칡이 들어간 줄 아느냐 비웃어도, 조미료 잔뜩 부은 그 시뻘건 자극덩어리 찬물 요리가 어찌 맛있냐고 혀를 차도 냉면은 맛있다.
홍대 앞 율촌 칡냉면이 지금처럼 맛이 싸해지지 않았던 적이 있다. 신촌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일주일에 세번씩 알바 식단으로 율촌 냉면을 먹었다. 함께 일하던 직원들은 도대체 그 조미료 가득한 가짜 냉면 어디가 그리 좋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내 인생 그대가 사는 것 아니듯이 내 혀도 너의 혀가 아니니 네 밍숭한 국물이나 드시라고 허세도 부렸다.
평생의 꿈은 지하 주차장이 있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에서 출근하고 아파트로 퇴근하는 삶이었다. 아파트가 갖고 싶었다. 아파트에서 뒹굴거리고 싶었다. 엘리베이터에 대한 로망은 학교 승강기 안전 지도때도 투영되는 것 같다. 유달리 학생들의 승강기 이용 지도에 집착하는 것이 어쩌면 안전 지도에 앞서 내가 누리지 못한 승강기 삶에 젖어버린 애들이 얄미워서는 아닌가 하고 돌아보기도 한다.
올해 봄, 헛된 꿈이라도 한번 찔러라 보자했던 아파트 청약에 덜컥 당첨되었다. 올해 봄 꿈노트에 적어둔 아파트 갖기 첫걸음이 떠밀려 왔다. 동과 호수를 뽑으러 추첨방에 들어가던 그 짧ㅇ은 복도와 계단의 길이는 임용고사 시절 최종 면접 고사실을 향했던 그 계단과 그 복도보다 멀고 추웠다.
봄 날도 잠시, 월급 님께서 눅눅한 통장에 찾아오시면 각종 은행과 공단에서 원금과 이자를 잘게 쪼게어 가져간다. 비어가는 통장에 가끔 심장이 덜컹 덜컹 내려 앉지만 자본주의 물든, 기계 만능주의에 물든 내 속세의 꿈은 채워져가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주말 아침 냉면도 먹고 싶고 승강기가 함께하는 꿈건물이 얼마나 조립되었는지 궁금하여 길을 나섰다. 대출 덩어리 건물이 올라가는 동네에는 작은 시장이 하나있다. 뼈대 밖에 없는 대출 건물 바로 건너편에 있는 시장 골목에는 냉면집이 하나있다.
시뻘건 국물, 강한 조미료 맛, 칡이 들어간 적 없는 칡냉면 면발. 대학생 때부터 그토록 좋아하던 신촌 율촌 냉면의 레시피와 비슷해 보였다. 곱빼기로 주문하고 온육수로 속을 다졌다.
냉면집 건너 대출 덩어리 건물은 아직 발바닥도 완성되지 않았다. 저 건물 중간에는 그토록 누르고 싶었던 승강기 버튼이 층층마다 올라가겠지 싶어 냉면집 테이블을 슬며시 툭툭 쳐본다.
냉면이 테이블 위에 올랐고 조미료와 가짜 칡면이 목구멍을 스치듯 지나가며 뱃속으로 쓸려 들어왔다. 캬. 나도 몰래 아저씨들의 교성을 내뱉는다.
왜 이리 맛있을까. 그 어느날 그 어느 곳에서 먹었던 냉면 보다 맛있다. 별 다를 일 없는 레시피일텐데 왜 이리도 혀끝도 눈끝도 입끝도 배끝도 맛있다고 서로 뜻을 모을까.
지금 먹은 한 젓가락 냉면발과 냉면 국물은 혼자가 아니었나보다. 저 대출 덩어리 건물이 제 모습을 찾고 그 빈공간에 내 물건들과 내 몸덩어리가 들어가 채우고 승강기를 눌렀다 뺐다 하며 저 공간에서 출근과 퇴근을 할 생각에, 저 공간에서 뒹굴 뒹굴할 생각에 냉면 맛도 오르락 오르락 한거였다.
세상 물정 모르던 평생 대출 채무자는 일없고 배고픈 어느 주말 오후 슬금 슬금 침대에서 기어 나와 맛난 냉면 집앞 몇걸음 걸어 먹을 한참 뒤 일상을 상상해 본다.
승강기 버튼을 수만번 누른 듯한 이 칡냉면이 너무도 맛있다.
빚 걱정은 잠시 잊고 조미료맛에 흥얼 흥얼 맛을 되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