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 개세>
생기부 마감에 비장한 공기가 감도는 교무실. 휘모리 장단에 맞춰 탭댄스를 추는 듯한 키보드 위 손가락들. 놓친 것은 없을까. 여기서 툭, 저기서 툭 새로운 정보가 등장하면 고도화된 점조직의 네트워크처럼 빠르게 퍼져간다 .
촉박한 시간안에 대량의 정보를 공유하다보니 차츰 용어 줄임말을 자연스레 사용하기 시작했다.
'행동 특성 및 종합 의견'을 '행발'로, '교과 체험의 날'을 '교체'로, '경기 꿈의 대학'은 '꿈대' 등으로 줄였다.
문제는 '세특'이었다. 과목별 세부능력 특기사항과 개인별 세부능력 특기사항을 구분해야 했다.
B 선생님은 언어의 통일을 꿈꾸며 바벨탑을 한층 더 쌓아 올릴 수 있는 깃발을 들어 올렸다.
"과세에 입력하는 거 맞지?"
"교체는 과세지."
선구자가 세종대왕 마냥 새로운 소통 시스템을 만들자 , 바벨탑 언어 동지들은 새 소통법을 따랐다.
그러나 이 깃발이 참혹한 결과를 불러올 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과세가 꽉 차는데? 그럼 어디에 넣지?"
교무실에서 가장 단아하고 청아하며 맑은 A 선생님이 친절하게 대답했다.
그 친절함이 소통의 바벨탑 기둥을 뒤흔들줄 몰랐다.
"개세에다 넣어야죠."
개세. 분명, 개인별 세부 능력 및 특기 사항을 말씀 하시는 것이었다. 새로운 줄임말이 탄생했다. 새로 개통한 경강선 KTX의 굉음마냥 귓구멍이 울렸다.
"뭔 세?"
단아하고 청아하며 맑은 A 선생님은 다시 한번 친절하게 말씀하셨다.
"과세 꽉 차면 개세로 돌리면 되요."
바벨탑 일꾼들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새로운 정보를 빠른 속도로 나누었다.
"아, 개세래요. 개세"
"그치, 그건 당연히 개세지"
"개세마저 꽉 차면 행발로 돌리나?"
"개세 문구를 줄여서라도 개세에 넣는게 낫지 않아?"
"되도록이면 개세말고 과세로?"
"오케 일단 개세로"
"개세 다하신분? 샘플 좀"
그렇게... 바벨탑을 쌓아 올리던 줄임말 언어의 탄생 무대는...
개세판이 되었다.
참으로 처참하고도 아름다운 풍경이었다.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