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권은 국군의 날의 의미를 전 정권과 다르게 해석했다. 군사력 과시 퍼포먼스는 최소화하고 군인 장병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이벤트에 집중했다. 기념행사 피날레는 이런저런 이유로 군 복무를 두 번이나 해야 했던 국제 가수 싸이가 맡았다. 국군 장병들은 밝은 표정으로 함성을 지르며 열광했다. 국군의 날의 주인공인 군인들을 위한 축제였다.
기념일의 주인공을 기념일의 주인공으로 대접해주는 국군의 날이라니.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았었기에 더 큰 감동이었다.
한데 이런 국군의 날 행사를 보며 혀를 차다 못해 분노 한사발 가득 물고 열변을 내뱉는 사람들이 있나 보다. 땡볕에 장비를 풀세트로 갖추고 오와 열 어렵게 어렵게 맞춰가며 행진하는 강도 높은 노동 퍼포먼스를 보고 싶었나 보다. 밖으로는 북괴 놈들이 적화 통일의 야심을 품지 못하게 하고, 안으로는 국민들에게 안보 의식을 높여주고 덤으로 군사 독재 시절의 향수를 살짝 건들어 주길 바랐나 보다.
국군의 날 군사 퍼포먼스를 위해 우리 국군 장병들이 휴일도 없이 장비 닦고, 다리미질 칼같이 하고 밀리미터 단위로 오와 열을 맞추는 강도 높은 훈련을 해주길 바랐나 보다.
기념일은 기념일의 주인공에게 감사와 행복을 건네주는 날이다. 기념일 주인공에게 네놈이 얼마나 네 본분을 잊지 않았는지 확인받는 날이 아니다. 어버이의 날에 "부모님. 얼마나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썼는지 증명해 보세요."라든가, 어린이날에 "5월은 푸르구나. 얼마나 자랐는지 테스트해보겠다."라든가, 노동절 날에 "얼마나 근면 성실하게 일했는지 성과급을 정산해볼까?"라든가, 성탄절 날에 "예수님. 어디 한번 얼마나 많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했는지 세봅시다" 하지 않는다. 생일 맞은 아이에게 "왜 태어났는지 대답하라. 삶의 성과를 한편의 뮤지컬로 표현해 보아라." 하지 않는다.
기념일에 기념일 주인공에게 본연의 자세를 요구하고 얼마나 임무를 완수했는지 증명하라고 강요하는 것으로 모잘라서, 더 가혹한 하루를 선물하는 날이 있다.
기념일 당사자에게 네놈들이 얼마나 기념 받지 못할 놈들인지 동네방네 떠들어대는 희한한 날이다. 기념일을 맞이하여 대상자를 제대로 한번 갈궈보는 묘한 날이 있다.
스승의 날이 그렇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교육청과 교육부에서 쌍으로 긴급 공문이 내려온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교사들의 노고에 감사한다는 공문이 내려올 거라는 기대는 마시라.
돈 받지 말아라, 손편지도 받지 말아라, 카네이션도 받지 말아라, 아무것도 받지 않을 테니 아무 것도 하지 말아 달라고 각 가정에 긴급한 통신문을 보내라,오늘을 기념하여 이제부터라도 똑바로 살라는 구구절절한 문서들이 쏟아져 나온다.
언론에서는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학생들에게 두들겨 맞는 교사들 뉴스와 촌지를 받아 처먹은 교사 몇몇의 범죄 행위 뉴스와 날로 무너져가는 교권을 걱정하는 기사로 도배가 된다.
댓글 판은 스승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철밥통", "무능한 집단", "잠재적 범죄자", "개 불쌍한 종족들", "나라가 망하는구나" 하며 조롱과 위로가 혼재되어 '댓망진창' 상황이 펼쳐진다.
굳이 기념일을 만들어서 기념일 대상자들인 교사들의 남은 몇 가닥 자존감마저 댕강댕강 잘라내준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병가를 써서 아예 학교에 가지 말아버릴까, 아이들이 괜한 기념식 같은 거 하지 못하게 교실 문을 앞뒤로 싹 다 잠궈버릴까 오만가지 불편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국군의 날의 본래 의미를 되찾아 군인들을 위로하고 그 노고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이번 행사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군인들은 자신의 직업과 직무에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고 자존감도 충만해졌을 테다.
만약 국군의 날을 맞이해서 군인들에게 더 강도 높은 훈련을 요구하거나 얼마나 많은 비리를 저질렀는지 진술하게 한다든가 얼마나 잘 싸울 수 있는지 증명하라고 한다면, 장병들 처지에서는 차라리 국군의 날을 없애주길 바라지 않을까.
국군, 소방관, 경찰, 어버이, 노동자 등등 우리 사회를 위해 묵묵히 최선을 다해주시는 분들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날들 모두 본래 의미를 더욱 되찾길 바란다. 그분들에게 깊은 감사와 위로를 더 할수록 우리 사회가 더 아름다워질테니 말이다.
그러니 스승의 날은 인제 그만 정리하면 어떨까. 철밥통에 수업 몇 시간 달랑하는 것 말고는 만고 땡인 교사들을 무엇 하러 기념한단 말인가. 방학때 띵까띵까 놀면서 국민 세금 쪽쪽 빨아먹는 거로 모자라서 온갖 성적 조작과 성추행과 촌지 받기를 일삼는 잠재적-현행 범죄자들을 무엇 하러 감사하고 위로하고 기념까지 한단 말인가. 모두가 인상을 찌푸리니 사회적 비용 낭비요, 달력에 잉크를 네글자 더 써야하니 경제적 낭비일 뿐이다.
이 천박한 적폐 집단을 기념하려다 우리 사회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있다. 당국은 하루빨리 이 무능한 범죄자 집단을 기념하는 날을 폐지해 주라. 적폐 청산, 쉬운 것부터 해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