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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고 김치는 늘 죄책감을 강요한다.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을 가득 담은 김장 김치를 냉장고 깊숙이 감금한 채, 불효자식은 차가운 자본주의가 만든 공장형 김치만 냉장고 앞칸에서 꺼내어 위장으로 집어 넣는다.

어머니가 만든 김치를 싫어했다. 김치맛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넣은 귀한 해산물들은 비린 맛을 입안 천장과 바닥을 오르내렸다. 어머니는 늘 아버지의 입맛에 맞추어 배추의 식감을 조절했다. 덕분에 난 김치를 씹을 때마다 혓바닥의 돌기를 짓누르는 불쾌감을 참아내야 했다. 친구집 김치는 그리 맛있던데. 식당 김치는 어쩜 이리 맛있을까. 

급기야 직접 겉절이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까나리 액젖과 설탕과 소금과 미원과 찹쌀 가루를 버무렸다. 맛은 있었지만 이걸 만드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만들어 옪은 김치가 다 떨어지는 날에는 냉장고 깊숙이 구겨 넣은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을 꺼냈다. 불효자식은 온갖 인상을 찌푸리며 MOM표 김치를 먹었다. 알콜 중독자가 술을 끊기 위해 무알콜 맥주를 참고 마시는 기분이었다. 

행복한 식사를 위해 귀찮음과 싸워 이겨내리라 다짐했다. 굳은 결심으로 배추를 주문하려했지만 배추가 모두 품절이었다. 이 땅에 이토록 불효자식이 많은 것인가?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을 배신하려는 이들이 넘쳐나서 배추가 품절된 거냐며 허튼 소리를 허공에 뿌렸다. 

"비비고 김치?"

비비고가 김치도 만들었다. 멀쩡히 원주민들이 잘 살고 있던 아메리카 대륙을 두고 '발견'했다고 우기던 유럽 침략자가 된 것 같았다. 비비고 제품은 어떤 종류의 음식이라도 품질과 맛이 평균 이상이었다. 가격도 적당해 보였다. 김치를 만들며 몸을 고되게 하는 것보다 기성품을 사먹는게 덜 죄스러울 것 같았다.

내 정성과 시간을 들여 김치를 만들어 먹느니, 클릭 몇번에 남의 김치를 먹는 편이 어머니께 덜 죄스러웠다. 불효를 정성들여 저지르는 것 보다는 돈 몇만원이 덜 나빠보였다. 

맛은 말해 무엇하랴. 온갖 석학들이 모여 자사의 브랜드 가치를 걸고 만든 제품아닌가. 식감까지 아삭하다. 김치가 떨어지만하면 또 주문하고, 떨어지기도 전에 또 주문했다. 

"김치 안 떨어졌니?"

어머니는 사랑과 정성의 소모를 늘 확인하셨다. 다행인 것은, 어머니의 김치는 반찬으로 먹을 때는 상품 가치가 매우 떨어졌지만, 김치 찌개, 김치 볶음밥, 김치전, 김치 두루치기의 재료로 사용할 때는 억만 달러짜리 최상품의 재료였다. 죄스러운 마음은 어느덧 사라지고 불효자는 김치 전문 쉐프가 되었다. 

김치를 애써 만들어주었지만 묵은지가 될 때까지 계속 냉장고에 고이 숨겨두었다. 어머니는 참으로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좋아해야 하나 뭐라해야하나 말을 삼키신다. 본가에 서둘러 찾아가 특제 김치 두루치기를 해드려야겠다. 
"어머니. 어머니 김치로 만든 최고의 요리입니다."

물론 불효자는 오늘도 비비고를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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