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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 정도되는 새해 다이어리를 아버지께 선물해 드렸다. 아버지는 눈가에 주름을 숨기지 않고 환하게 웃으셨다. 작은 선물로 기쁨을 드릴 수 있어 행복했다. 

아버지는 회사에서 나눠준 다이어리를 매해 사용하셨다. 아버지는 계획을 세우고 자잘한 기록을 남기시는 걸 좋아하셨다. 글씨체도 너무 훌륭하셨다. 비록 국민학교만 졸업하셨지만 아버지는 중국 사람과 한자로 필담을 나눌만큼 글을 사랑하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늘 회사 다이어리에 불평을 흘리셨다. 크기가 마음에 안들고 두께가 성에 안차고 종이 질감이 취향에 맞지 않으셨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아버지와 함께 동네 팬시점을 탐방한다. 회사 다이어리에 물리신 아버지의 상처를 달래줄 다이어를 찾아 떠난다. 이 매장 저 매장을 찾아보아도 아버지는 늘 씁쓸한 뒷맛을 느끼셨다. 크기가 조금 마음에 안들어서, 두께가 조금 성에 안차서, 종이 질감이 취향에 조금 맞지 않으셨단다. 

그렇게 몇해를 아쉬워하던 아버지는 작년에 구입한 다이어리는 마음에 든다며 흡족해하셨다. 모닝글로리 제품이었다. 가죽 느낌나는 표지가 튼튼해서 성에 딱 차고, 넉넉한 크기가 마음에 들고, 손에 닿는 종이 질감이 취향에 맞는다며 좋아하셨다. 어떻게든 아버지가 흐뭇하게 사용하실 다이어리를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막내 아들의 기나긴 여정의 플롯이 마무리되었다. 

아버지는 작은 일과도 모두 기록하신다. 수려한 필체로 하루와 삶을 기록하며 시간이 나실 때마다 기억들을 꺼내 읽는다. 본의 아니게 아버지의 일기장을 엿본 날에는 "막내 이놈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게 분명하다. 아주 못되어 처먹었다."라는 충격적인 폭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요놈으로 올해도 부탁해."

아버지는 같은 색깔, 똑같은 크기, 동일한 두께의 모닝글로리 다이어리를 사달라고 말씀하셨다. 밖을 쉽게 돌아다니기 힘든 요즘인지라 쿠팡을 검색했다. 다행히 아버지가 찾던 제품을 찾았다. 혹시 몰라 줄자를 가져와 아버지가 쓰시던 다이어리의 가로 세로 길이를 여러번 재었다.

 

"확실해? 요거랑 똑같은거야?"

"네네. 아버지 걱정마세요."

다행히 작년에 쓰던 제품과 똑같이 디자인된 다이어리가 아버지를 찾았다. 기업가 정신이란 혁신과 변화를 두려워않고 끊임 없이 이어가는 것이라 여겼지만, 다이어리만큼은 안된다. 늘 한결 같이 , 우리 아버지의 취향에 딱 맞게 1미리도 변함 없이 영원히 오래오래 건강하게 내 아버지의 하루와 함께하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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