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no광고후기] 혀와 뇌가 말했다. "이게 원래 맥주 맛 아니었어?" : 칭따오 무알콜 맥주 후기
 
보리 향만 맡아도 숨을 헐떡였다. 맥주를 마시지 못하니 금단 증상 비슷한 사무침이 밀려왔다. 편의점 냉장고에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유혹하는 못된 수입 맥주들을 보며 주먹을 슬며시 쥐고, 건널목 앞에서 헤어진 연인을 만난 사람처럼 시선을 급히 카운터 쪽으로 돌린 적도 많았다. 여차여차한 이유로 한 달간 금주령이 떨어졌다. 특별 몸 관리 기간이 찾아왔다. 당분간은 맥주, 소주, 양주, 막걸리, 와인, 꼬냑, 위스키 알콜이 들어간 모든 '음료'를 마시지 말아야 했다. 그러니 보리차의 향내만 슬쩍 맡아도 맥주 생각이 치솟아 올라 그리움만 쌓여갔다.
 
무알콜 맥주를 마시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무알콜 맥주는 내게 혐오 식품이었다. 몇몇 무알콜 맥주를 마셔봤지만, 입맛을 크게 버리고 말았었다. 특히나 국산 맥주가 내 혀를 괴롭혔었다. 알콜을 품지 않았다는 자명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맥주 맛을 흉내 내려는 못된 향내를 가득 품었다. 맥주를 잠시라도 잊게 해 줘야 무알콜 맥주의 본연의 임무를 완수할 텐데, 국산 무알콜 맥주는 도리어 진짜 맥주를 향한 그리움만 더욱 커지게 해주었다.
 
무알콜 맥주를 맛없게 만들어서, 원래 팔던 진짜 맥주의 판매량을 높이려는 노이즈 마케팅인가 의심스러웠다. 그러면 수입 맥주는 다르려나 하는 생각에 하나씩 주문해서 마셔봤다. 정도의 차이만 있었다. 이 나라 맥주, 저 나라 맥주건 무알콜 맥주들은 진짜 맥주를 더욱더 그립게 만들 뿐이었다. 어떤 회사의 제품은 마실 때마다 역한 기운이 올라와 박스째 버린 적도 있었다.
 
그렇게 돌고 돌아 만나게 된, 칭따오 무알콜 맥주.
 
로켓에 실려 하루 만에 배송 왔다. 이 맛에 와우 회원이다. 별 기대 없는 마음으로 시큰둥하게 박스를 뜯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은 이세계에서도 통하는 불변 진리였다. 허망한 바람을 최대한 줄이고 영혼을 절제한 채 칭따오 무알콜 맥주를 냉장고에 심었다. 이제 몇 시간 동안 냉장고에서 온도를 낮춰주면 못 먹을 정도는 아닌 상태가 되겠거니, 하는 생각뿐이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샤워를 시작했다. 몸의 온도를 최대한 끌어 올리려는 속셈이었다. 제아무리 '맛이 없는' 맹물이라 하더라도 땀을 뻘뻘 흘리거나 뜨거운 욕탕에서 헐레벌떡 나올 때 마시면 크으으으 하는 시원한 맛을 내지 않던가. 칭따오 무알콜 맥주가 아무리 맛이 없어도 이 정도로 몸을 혹사한 후에 마신다면 맥주 생각을 조금이라도 덜 나게 해주리라는 계산이었다.
 
 
 
 
딱~~~
 
경쾌한 소리를 내며 칭따오 무알콜 맥주를 땄다. 그리고 벌컥벌컥 녀석을 목구멍에 쑤셔 넣었다. 식도를 타고 녀석이 내 몸을 구석구석 누비기 시작할 때 눈이 번쩍 뜨였다.
 
"맥주 아냐?"
 
혀가 뇌에 물었다. 뇌는 다시 혀에 물었다.
 
"맥주 아니라고?"
 
몇 번을 다시 마셔보아도 맥주 맛이었다.. 내 혀와 뇌를 불쾌하게 해줬던 수많은 못된 무알콜 맥주들이 머릿속에서 하나둘 지워졌다. 그토록 찾던 맥주 마시었다.
 
"크으흐으으"
 
치킨 다리를 뜯으며 생맥주를 들이킬 때 나오던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렇다. 드디어 찾아냈다! 맥주 생각을 덜 나게 해줄 치료제를 이제야 만나게 되었다.
 
모든 것이 맘에 들었지만 단가를 낮추려는 생각이었는지 캔 두께가 너무 얇았다. 그러다 보니 한 박스에 한두 캔은 꼭 구멍이 뚫린 채로 배송 왔다. 줄줄 흐르는 액체에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그래도 대안이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기도만 드릴 뿐이었다. 제발 이번에는 온전한 녀석들로 와주세요. 비나이다.
 
금주령이 끝난 이후에 수입 맥주를 사러 편의점을 찾았다. 우아하고 요염한 자태로 날 유혹하던 녀석들을 골라 집으로 납치해왔다. 진짜 맥주의 캔 뚜껑을 오랜만에 딸 때는 묘한 설렘마저 찾아왔다. 내가 네놈들을 잊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생과 여정을 견뎌내야 했는지 아느냐. 나의 진짜들이여 어서 내게 들어오라! 내 목구멍을 타고 흘러 내 안에서 격하게 요동쳐주오.
 
"어? 뭔데…. 이거.."
 
진짜 맥주를 마셨더니 역한 기운이 올라왔다. 내가 알던 맥주 맛이 아니었다. 맥주에 소주를 한가득 부어 넣은 맛이 올라왔다. 칭따오 무알콜 맥주를 먹는 동안 뇌가 리셋되었나 보다. 원래 맥주 맛을 지워버리고 칭따오 무알콜 맥주 맛이 진짜 맥주 맛이라고 느꼈다.
 
"에라. 잘됐다."
 
알콜 많이 마셔봤자 무엇하리. 몸에도 안 좋고 해롱해롱 마음 실수만 늘어놓을 텐데. 그리하여 그날 이후 친구들과 흥겨운 술자리가 아니면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뜨거운 샤워를 마치거나, 땀을 뻘뻘 흘린 날이거나, 일터에서 치여 씁쓸한 퇴근 날에 칭따오 무알콜 맥주로 대신 몸을 적신다.
 
몸에도 덜 나쁘고 마음에도 덜 나쁘지 않던가. 돈도 덜 드니 더 좋지 않던가. 글을 쓰다 보니 한 캔 생각나는구나. 스팸 구워 한잔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