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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보 기고) 나에게 감사편지란

category 글적글적 2022. 7. 7. 12:18

문화 일보 기고

 

기사 원문 링크 : tinyurl.com

■ 나에게 감사편지란 - 안태일 화수고등학교 교사

“어른의 감사와 어른의 사과는 뭐로 해야 한다고 했지?”

내 질문에 아이들이 합창하듯 대답한다. “돈이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이렇게 고마움을 표현하면서 돈 한 푼 안 들이고, 종이 한 장으로 대신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이 말이지요. 여러분의 감사 편지를 받는 분들은 여러분의 작은 수고 덕에 큰 행복을 느낄 겁니다. 여러분에게 고마움을 느끼겠지요! 이 모든 게 무료입니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펜을 드시라!”

 

장터에서 약장수가 약을 파는 듯한 어투를 일부러 지어낸 덕분인지 모두가 웃고 즐기는 분위기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나는 반 아이들에게 ‘감사 편지지’를 나눠주었다. 5분 정도의 짧고도 긴 시간이 흘렀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편지를 작성하는 데 차이가 났다. 막힘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아이가 있는 반면, 편지지 첫 줄도 채우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몇몇 아이들은 자신들의 ‘우선순위’에 맞추어 자기 할 일을 이어갔다. 편지지를 책상 구석에 밀고 학원 문제집을 꺼내 풀었고, 수행평가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하는 아이들도 보였다. 나는 나대로 내 가르침의 우선순위에 따라 내 할 말을 이어갔다.

 

 

“당연한 것들에게 감사할 줄 아는 법을 배우렴. 부모님과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 학교에 갈 수 없는 아이들, 일주일에 한 끼의 식사도 버거운 이들. 우리가 당연히 누렸던 것들이 실상 누군가에게는 절박한 꿈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러면? 하루하루가 더욱 행복하고 의미 있게 느껴질 거야. 당연하지 않음에 감사를 느끼고, 감사를 느끼기에 나의 일상이 행복으로 가득함을 확인할 수 있어. 그러니 감사는 행복이지.”

뒷줄에 앉아있던 한 아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저는 우리 집 강아지 때문에 하루하루가 너무 즐겁거든요? 강아지한테 감사편지 써도 돼요?”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잠시 누르고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아, 그래도 될 것 같긴 한데 문제는… 강아지가 글을 아직 못 깨쳤을 것 같아서 말이야.” 나의 농담에 반 아이들 모두 크게 웃었다. 질문한 아이도 손뼉을 치며 웃었다. 감사한 질문이었다.

“그 강아지를 집에서 기르게 해준 부모님께 감사편지를 쓰면 되겠다. 강아지를 집에서 기르는 일은 당연한 것이 아니잖아?”

아이가 건네준 질문에 교실 전체 분위기가 한결 밝아졌다. 문제집을 붙잡고 있던 아이들도 반 분위기를 훌쩍 보더니 편지지를 꺼내 들고 자세를 고쳐잡았다. 나의 감사 예찬론을 들어준 아이들이 참 고마웠다. 그리고 행복했다. 감사편지는 이타적인 글쓰기가 아니다. 감사편지는 이기적인 글쓰기다. 더 많은 이가 감사편지 쓰기에 함께하길. 그리하여 더 많은 이가 행복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