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이 되었다고 상상해보자 여러 삶의 ‘트리’가 있겠지만 대학생이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그 다음, 나의 스무살 대학생활을 상상해보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내 마음대로 술과 담배와 화장과 두발과 복장을 코스튬하고 있을까?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고 있을까?
맘에드는 이성친구와 교제하고 있을까? 미팅 소개팅 작업 전선에 뛰어 들고 있을까? 학점을 잘 받기 위해서 도서관에서 밤샘 공부를 하고 있을까?
동아리? 취업준비? 어학 연수? 그래 많은 삶의 모습이 너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지. 이제 물어 보자. 스무살이 되면 우리는 ‘어른’이 되어 있는 것일까?
대학생이 되면 어른이 되어 있는 것일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70-90년대 대학생들과 요즘 대학생들의 모습 차이에서 뭔가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외모에서 오는 차이가 아니라, 수식하는 단어들의 차이에서 알 수 있다.
그 당시 ‘대학생’ 앞에 붙어 있떤 수식어들은, ‘행동하는’, ‘지식인’ , ‘피 끓는’, ‘구국과 애국’ 그리고 ‘패기와 진취’ 등이었다.
요즘은, 대학생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들은 ‘통통 튀는’ , ‘소비 문화’ , ‘취업준비’ , ‘어린’ 이다. 흔히들, 요즘 대학생들은 어른스럽지 못하다고들 하지? 이상하기도 하지.
같은 스무살인데, 같은 대학생인데 왜 그 시절과 지금의 모습에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때와 지금, 무엇이 바뀐 것일까.
이것부터 말해줄게. 성숙한 것이 성숙하지 못한것보다 훨씬 바람직하고, 훨씬 간지난다는 것. 성숙하다는 것은 ‘나’만을 보지 않고 나와 내 주변을 둘러싼 것들을 보기 시작하고 알려고 하는 거야.
내것, 내 이익, 내 슬픔, 내 친구, 내 자식만을 보지 않는 것을 말하지. 내 주변의 것, 내 주변의 이익과 슬픔과 고통을 느끼는 것이, 성숙의 시작이거든.
그리고 내 주변의 것을, 그것을 둘러싼 올바른 정의가 무엇이고, 진리는 무엇인지 탐구하려는 마음. 그것이 옳다면 적극적으로 따르고, 그것이 옳지 않다면 맞서 싸우려는 것. 내 것만을 챙기려 않고, 내 주변의 것을 위해, 내것을 손해 보더라도 챙겨 주려는 마음.
그것이 바로 성숙이란다.
그 성숙한 마음과 삶을 누리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하고 ‘어른스럽다’라고 하는 거란다.
몸의 나이가 스무살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숙의 나이가 ‘스무살’이 되는, 그런 삶의 주인공으로 자라나길 바란단다.
그게, 더 간지나니까,
그런 간지가 모여, 더 좋은 세상이 되는 거니까.
힘내라, 알았지? 청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