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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스페셜 게스트 누굴까" 선생님 수다 코너에 ㅎㅎㅎ 사제·친구사이 소통의 문 활짝
■중산고 팟캐스트 방송으로 화기애애
제작 날짜·출연자 정하지 않고 청소·쉬는 시간 짬짬이 녹음
학교 일상부터 고민상담까지 문제아·소극적 학생도 적극 참여
게임·채팅 아닌 SNS 활용 새 장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입력시간 : 2012.05.24 21:22:14수정시간 : 2012.05.24 13:07:42
중산고 안태일 교사가 학생들과 교내 팟캐스트 방송 '1318 감성통신문'을 녹음하고 있다. 안 교사는 "팟캐스트 방송이 한 반 친구 이름도 못 외우는 요즘 학생들의 새로운 소통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6교시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복도로 나온 아이들이 왁자지껄 수다를 쏟아낸다. 그 사이를 가로질러 서너 명의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 남자 휴게실로 들어간다. 상담이라도 하는걸까.
"안태일 선생님의 1318 감성통신문 오늘 5월 22일 화요일 입니다. 지금 청소시간 인데요. 오늘은 간만에 '이정우가 만난 사람들' 코너를 할 거구요. 오늘은 스페셜 패널이 나왔습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정우가 만난 사람들'의 이정우입니다. 오늘은 우리 반의 뉴페이스를 만나 보겠습니다"
안태일 교사(33)가 손에 든 건 유료 앱 '레코더 프로'가 깔린 아이폰과이어폰 잭에 꽂힌 핀 마이크. 탁자 하나를 두고 교사와 학생들이 둘러앉은 남자휴게실이 중산고의 팟캐스트 방송 '1318 감성통신문'제작 현장이다. 2학년 9반의 온갖 소식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이 팟캐스트 방송의 야심찬 코너는 9반의 재간둥이 이정우(17)군이 소극적 성격인 반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이정우가 만난 사람들'. 이 날의 게스트는 중국 유학을 갔다가 일주일 전 돌아온 복학생 친구(18).
"중국에서 열심히 공부하셨을 텐데, 어떤 상황 때문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는지요?"능숙한 정우군의 질문에 친구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이 잘 안 통하다 보니 학교와 마찰이 빚어지는 등 안좋은 일이 생겨 돌아왔다"고 말했다. 이번엔 안 교사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나한텐 그런 얘기 안 했잖아!"
녹음 시간은 5분에서 20분으로 들쭉날쭉. 제작 날짜, 출연자도 미리 정해진 게 없다. 그저 하루에도 몇 번씩 기상천외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고등학교 교실의 일상을 담임인 안태일 교사와 학생들이 모자이크처럼 엮어 만드는 것이 국내 고교 최초의 팟캐스트 방송 '1318 감성통신문'의 모습이다. 안 교사는 40여 명의 학생들이 부대끼며 성장하는 학급에서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구성원 간 소통을 모색하는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교사 집단이 상당히 폐쇄적인 조직이거든요. 이 집단의 소통수단으로 팟캐스트 방송에 주목했죠."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의 활용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작년 7월부터 팟캐스트 방송을 만들기 시작했다. 교사생활의 애환을 코믹하게 담은 동영상 팟캐스트 방송 '출제해서 생긴 일'을 혼자 제작하던 중 담임을 맡은 반에서 생긴 문제와 직면했다. "학업성적이 안 좋은 반의 담임을 맡았는데, 다른 선생님들이 우리 반에서 도저히 수업을 못하겠다고 할 정도로 교실 분위기가 나빠졌어요. 그러다보니 저도 자연히 아이들과 멀어지게 됐죠. 교사끼리 소통하자고 팟캐스트 방송을 만들면서 정작 우리 반 아이들과 소통이 안되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아이들과의 소통 통로로써의 팟캐스트 방송을 고민하던 어느 날 야간 자율학습 시간. 안 교사는 여느 때처럼 몰래 도망가는 학생들을 붙잡았다. "그 때 화를 내려다가 혹시 이 아이들에게 마이크를 갖다 대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궁금해서 시범 방송을 해 봤죠."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평소 교사에게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던 아이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잡혀온 애가 자기만 도망간 게 아니라며 다른 애들을 불러오고, 그러다 몰래 담배 핀 애들 데려오고, 나중엔 담배를 어디서 샀는지까지 얘기 하더라구요."
안 교사는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아이들의 소통ㆍ표현 욕구를 발견했다. "청소년들에게는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거든요. 마이크 앞에서 의식하고 긴장할 것 같지만, 학생들끼리 서로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하게 하면 제가 있어도 훨씬 말을 잘 해요" 방송을 자주 듣는다는 김우연(17)양은 "반에서 대하기 어려웠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나온 방송을 듣고 굉장히 가깝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인터뷰 코너를 직접 운영하는 정우군은 "조용한 친구들에게서 좋은 대답을 끌어 내고 싶은데 단문으로 대답하니까 진행이 힘들다"며 "그래도 방송을 하면서 대화 기술이 늘었다"고 말했다.
많은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대부분 게임이나 메신저 채팅에만 몰입하는 상황에서 팟캐스트 방송 청취율은 높지 않다. 안 교사는 "반에서도 우리 방송을 듣는 학생은 10명 정도지만 방송을 듣는 것보다 직접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이 토론과 발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1318 감성통신문'과 '출제해서 생긴 일' 외에도 교사들이 직접 출연해 학교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선생님 수다방', 담당 과목 보충학습 동영상 방송 'GTT 안태일 샘의 레알 보충'을 제작한다. 여기에 학생들이 가입한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어 학급관리와 질의응답, 토론수업 등을 진행한다. 끊임없이 공교육 현장에 SNS 활용을 도입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학생들이 컴퓨터를 다 사용할 줄 안다고 '정보와 컴퓨터'시간을 계속 줄이는 추세인데, 그럴게 아니라 게임과 카카오톡만 하는 학생들에게 스마트폰을 제대로 사용하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올해 중산고에는 팟캐스트 방송 동아리가 생겼다. 이 생소한 동아리에 흥미를 느껴 찾아온 학생은 전교에서 5명.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60억 인구에게 '내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학생들은 설레고 있다. "만들고 싶은 방송을 이야기하라고 했더니 어떤 학생은 검찰 비리를 캐는 방송, 어떤 학생은 욕설 배틀 방송을 하자더라구요. 선생님 짤린다고 말렸어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