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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문 쓰던 아이.> ‪방망이깎던노인‬



벌써 몇 년 전이다. 내가 발령 난지 얼마 안 돼서 부천으로 출퇴근 할 때다. 원치않던 학생부 징계


 담당을 맡아 벌점이 쌓여 온 아이들을 도맡아 지도해야 했다.

교무실 맞은쪽 복도에 앉아서 홀로 교내 봉사 받던 아이가 있었다. 반성문만 한장 걷어 가려고 작성하라고 부탁했다. 적당히 종이 한장을 주니 원고지로 달라고 하였다. 그냥 종이에 써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그냥 종이에 반성문을 쓰라고 하오? 안줄려거든 나 선도 처분 안받을라오"

대단히 무뚝뚝한 아이였다. 더 윽박지르지도 못하고 쓰기만 써달라고만 부탁했다. 아이는 잠자코 열심히 적었다. 처음에는 빨리 적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적고 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못들은 체 한다. 나도 여가가 있으니 빨리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체 대꾸가 없다. 점점 술 약속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이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더 적지 아니해도 좋으니 그만 달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테크 트리를 제대로 타야 빌드가 되지, 드론이 재촉한다고 럴커가 되나요?"

하면서 오히려 야단이다. 나도 기가 막혀서,



"혼내는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적는다 말이오? 거 학생 양반, 외고집이시구려, 나도 여가시간을 보장받아야 한다니까..."



학생은

"어허, 그러시면 다른 학생한테 가 시우. 난 안 적겠소"

하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선도 처분을 멈출 수도 없고 술 약속 시간은 어차피 늦은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적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글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글이라는 건 제대로 작성해야지. 적다가 놓으면 되나요?"

좀 누그러진 말투다.




이번에는 적던 것을 숫제 책상에 엎어 놓고 태연스럽게 폰을 꺼내 들어 셀카 인증샷 짓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꼉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 아이는 또 적기 시작한다. 저러다가는 반성문 빈 칸은 다 없어질 것만 같았다. 또 얼마 후에 원고지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반성문이었다.



술 약속을 미루고 다음으로 미뤄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반성문을 써 가지고 선도가 진행될 턱이 없다. 선생 본위가 아니가 자기 본위다.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학생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아이는 태연히 얼굴을 45도 기울이며 다시 셀카짓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어딘지 모르게 아이다워 보이는, 그 바라보고 있는 옆 모습, 그리고 맹한 눈매와 도토리 미니미 헤어스타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아이에 대한 짜증과 증오심도 조금은 덜해진 셈이다.





학생부장에게 반성문을 내놨더니, 부장은 성실하게 잘 적었다고 야단이다. 학생부에 보관하고 있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반성문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부장의 설명을 들어 보면, 잘못한 일을 너무 쓰면 반성할 것을 적을 칸이 모자라고, 같은 학생이라도 자존감이 무너져 추수 지도가 힘이 들며, 잘못한 일을 너무 안적으면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까먹기가 쉽다는 것이고, 요렇게 꼭 알맞은 반성문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아이에 대한 내 태도를 늬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반성문은,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만 남발하거나 컨트롤 씨, 컨트롤 브이만 가득할 뿐이었다. 그러나 요사이 반성문에는,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냐고 항변하는 글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반성문에 과거, 현재, 미래가 철썩 달라 붙어 있을 때, 이것을 소름 돋는다, 라고 했다.




음악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테이프나 시디를 사면, 엘범 속지가 그럭 저럭인 것은 쏘소, 그보다 나은 것은 소장용, 한정판 마냥 뮤지션의 사진과 에세이까지 들어간 것은, 어머 이건 꼭 사야 돼 했다. 어미 이건 꼭 사야돼, 하는 엘범 속지는 그 속지 만큼이나 엘범 가격도 더 비쌌지만 백만장 씩 엘범이 팔렸다.




사실 속지가 문제가 아니라 엘범의 완성도에 자신이 있는 뮤지션이라면 엘범 속지까지 꾹꾹 눌러 담아 발매했다. 값은 그만큼 더 나갔다. 하지만 그래도 음반을 구매했다. 뮤시션의 속지와 이름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말조차 없다. 어차피 이래 저래 스트리밍 서비스인데 엘범 속지나 음악 자체에 혼을 실어 작업하는 뮤지션도 많을리 없고, 또 음반을 사주거나 제 값 주고 다운로드 받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흥은 흥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이나 음악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훌륭한 것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겼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음악을, 미술품을, 글을 만들어 냈다. 이 반성문도 그런 심정에서 작성했을 것이다.



나는 그 아이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겼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반성을 해 먹는담"하던 말은, "그런 아이가 나 같은 교사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어 졌다.




나는 그 아이를 찾아가 치킨에 콜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주 월요일에 출근하는 길로 그 아이를 찾았다.





그러나 그 아이가 앉았던 책상에 아이는 와 있지 아니했다. 교내봉사 5일이 모두 마무리 된 것이다. 나는 그 아이가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할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아이는 교내 봉사 5일을 채우고는 자퇴해버렸다. 맞은 쪽 복도 조명을 끼고 셀카 각도를 잡아 보았다.




복도 창문 사이로 얼짱 각이 나오게 해주는 햇살이 내리 쏘고 있었다. 아, 그 때 그 아이는 저 햇살에서 얼짱 사진을 찍고 있었구나. 열심히 반성문을 쓰다가 유연히 창살 끝 햇살에 얼짱 각을 지키며 셀카짓을 하던 아이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 학생부에 들어갔더니, 부장이 반성문들을 폐기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반성문을 구경한지도 참 오래다. 요사이는 왜요, 뭐가요, 나는 잘못 없음, 너님이 먼저 잘못했음, 따위에 하소연 글 짓들만 가득하다. 애수를 자아내던 그 반성문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몇 년 전, 반성문 쓰던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